진퇴양난 ‘뮬란’ 오점 남긴 ‘디즈니’

입력 2020-09-09 17:27 수정 2020-09-09 17:47
영화 '뮬란'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디즈니 블록버스터로 화제를 모은 영화 ‘뮬란’이 타이틀롤 류이페이(유역비)의 과거 친중 발언과 보이콧 운동으로 험로를 걷고 있다. ‘겨울왕국’ 등 여성서사를 앞세운 트렌디한 애니메이션을 선보이며 승승장구하던 디즈니의 행보에도 오점을 남기는 모습이다.

오는 17일 개봉하는 영화 ‘뮬란’은 용감하고 지혜로운 뮬란이 여성임을 숨기고 적들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위대한 전사가 된다는 내용의 블록버스터로 동명 애니메이션(1998)을 실사화한 작품이다. 당초 3월 대대적인 개봉을 준비했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개봉을 수차례 연기했다. 최대 시장인 여름 개봉까지 무산되자 디즈니 측은 현지에서 자사 OTT인 디즈니플러스 공개를 결정했고, 디즈니 플러스가 상륙하지 않은 국가에서는 스크린에 거는 병행 작전을 펼쳤다.

디즈니가 자신들의 과거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굳이 ‘뮬란’을 택한 이유는 이 콘텐츠가 근래 문화계 메가 트렌드로 자리 잡은 여성 서사와 가장 들어맞는 작품이어서다. 앞서 디즈니는 ‘겨울왕국’ 등 과거 젠더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세련된 애니메이션 역량을 보여주며 승승장구했다. 또 ‘알라딘’ 실사화도 성공했었기에 ‘뮬란’의 흥행은 예정된 듯 보였다.

하지만 영화의 주역을 맡은 유역비의 과거 친중 발언이 발목을 잡았다. 유역비가 지난해 자신의 SNS에 “홍콩은 부끄러운 줄 알라”며 홍콩 시위를 비판했다는 사실이 네티즌 사이에 회자하면서 트위터에는 ‘보이콧뮬란(BoycottMulan)’이라는 해시태그의 보이콧 운동이 홍콩 대만 태국 등을 중심으로 불붙기 시작했다. 앞서 시민단체 세계시민선언은 지난 8월 31일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국내 멀티플렉스 극장에 영화 상영 중단을 촉구하는 서한문을 전달하기도 했다.

엔딩크레딧 사건은 보이콧 분위기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해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중국 자본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진 ‘뮬란’ 엔딩크레딧에는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의 투루판 공안국에게 감사를 표한다’는 특별 감사 문구가 명시됐다. 중국 북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는 위구르인 탄압 중심지로 강제 수용소가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지역이다. 세계위구르의회(WUC)가 이와 관련해 “디즈니가 ‘뮬란’으로 투루판 공안국에 감사한다고 했는데 이곳은 동투르키스탄 수용소에 관여해온 곳”이라는 글을 SNS에 게재하는 등 논란은 일파만파 번졌다. 하지만 논란에 대해 디즈니는 묵묵부답인 상황이다.

해외 매체들의 평도 엇갈린다.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는 ‘뮬란’을 “어떤 프레임도 독창적이지 않다고 불평할 수 있지만 보기에 매력적인 영화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호평했다. 인디와이어도 “우아한 이야기가 생기있게 뻗어가 지금을 위한 불변의 메시지를 전한다”고 했다. 반면 월스트리트저널은 “젊은 중국인 여성이 자신의 힘을 발견하는 이야기는 사랑스러우며 진실하지만, 종종 어설프고 즐거움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할리우드 리포터도 “류이페이는 주연으로서 충분한 카리스마를 갖췄으나 대본은 그에게 영화와의 관계성을 부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국 배경의 중국 배우들을 기용한 ‘뮬란’이 동양 문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오리엔탈리즘’ 비판에 시달리고 있어 아시아권 개봉 후 평가는 더 부정적으로 기울 가능성이 있다. 뮬란의 탄생 설정 등 주요 캐릭터에 변화를 준 탓에 기존 애니메이션 마니아들마저도 이질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위험 요소다.

‘뮬란’은 개봉 전 시사회 없이 17일 개봉을 진행하기로 했다. 영화 측은 OTT 등을 통해 사전 공개된 작품인 데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에서 바이러스 전파 위험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지만, 작품을 둘러싼 논란도 얼마간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득보다 실이 많은 것이란 판단에서다. 하지만 논란은 꺼질 기미가 없다. 진퇴양난에 처한 셈이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