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교도소 누명 썼던 이들…“아직도 시달려” 한목소리

입력 2020-09-09 16:58 수정 2020-09-09 17:35
디지털교도소에 신상정보가 공개된 뒤 김도윤씨가 SNS에 올린 글. 뉴시스

“디지털교도소의 실수로 개인정보가 공개됐다가 지워진 게 한 달 전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욕설 댓글에 시달리고 있어요.”

성범죄자 등 흉악범들의 신상정보를 임의로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 디지털교도소에 등록됐던 김도윤(30)씨가 9일 한 말이다. 디지털교도소 때문에 성범죄자라는 누명을 쓸 뻔했다는 김씨는 “그런 의심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큰 충격인데 이런 댓글들이 계속 달리는 것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디지털교도소는 지난 7월 초 격투기 선수 출신인 김씨가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공범이라는 제보를 받았다며 그의 개인정보를 공개했다. 그러나 확인 결과 김씨는 동명이인일 뿐 이 사건과 무관한 인물이었다. 김씨는 곧장 디지털교도소에 항의했고, 디지털교도소는 그의 신상정보를 사이트에서 내린 뒤 “운영진의 제보 검증 단계에서 확실한 확인 없이 업로드됐다”고 공지했다.

김도윤씨의 항의를 받은 뒤 디지톨교도소가 올린 입장문. 뉴시스

이로부터 약 한 달 후. 김씨는 여전히 자신을 성범죄자라고 비난하는 댓글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는 아직도 “인간적으로 미성년자는 건드리는 게 아니다” “이분 성범죄자 맞나요?” 등의 댓글이 게시돼 있다.

김씨는 “디지털교도소에 개인정보가 올라간 뒤 가족과 친구들은 물론이고 평소 연락을 잘 안 하던 사람들에게서도 전화가 왔다”며 “그래도 가까운 사람들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믿어줬기 때문에 처음에는 오해가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나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저 같은 경우는 다행히 연고지가 밀양과 완전히 다른 곳이어서 상대적으로 오해를 풀기가 쉬웠다”고 덧붙였다.

당시 디지털교도소는 실수를 인정하면서 “한국에 가면 사과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는 상황이다. 김씨는 “이메일로도 연락을 해봤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며 “시간이 흘렀지만 아무런 사과도 받지 못했고 연락도 없으니까 아직 억울한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최근 디지털교도소에 등록됐던 고려대 재학생이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서는 “사람마다 감정이 다 다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정말 큰 상처가 됐다는 뜻 아니냐”며 “디지털교도소로 인해 죄 없는 피해자들이 계속 나온다. 이런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이 사이트는 꼭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정호 교수. 뉴시스(채 교수 제공)

김씨처럼 디지털교도소의 잘못으로 아무런 죄 없이 개인정보가 공개된 피해자는 더 있다. 채정호 가톨릭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다. 채 교수는 자신의 신상정보가 엉뚱하게 공개된 뒤 디지털교도소에 항의했으나 돌아온 건 “인증받은 내용이라 삭제할 수 없다”는 시비조의 답변뿐이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채 교수는 이 사이트 운영자를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경찰에 고소했고, 자신의 휴대전화를 스스로 제출해 포렌식을 받았다. 그 결과 경찰청은 최근 “디지털교도소에 정보가 공개됐던 텔레그램 채팅을 한 인물은 채 교수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내놨다.

진실이 밝혀졌지만 채 교수 역시 아직도 성범죄자라는 낙인과 싸우고 있다. 채 교수는 8일 뉴시스에 “저한테 치료를 받고 회복한 환자가 ‘교수님만 믿고 회복돼서 살고 있는데 잘 살아갈 자신이 없다’는 문자를 보낸 적이 있다”며 “사실이 아니라고 설득했지만 환자가 ‘너무 마음이 상하고 힘들다’고 해서 저도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또 “이분처럼 저에게 말을 하는 환자도 있겠지만 말조차 못하고 마음의 상처로 안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며 “그런 분들에게는 제가 해명을 못 하니까 더 걱정된다”고 말했다.

채 교수는 “법치국가에는 엄연한 사법체계가 있다. 이런 식으로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복수를 위해 조폭을 불러서 때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운영자 본인은 의로운 일이라고 생각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면서까지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논란이 계속되자 디지털교도소 측은 지난 8일 오후 사이트 접속을 차단했다. 경찰에 따르면 대구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디지털교도소 운영자 수사와 관련한 국제 공조를 요청, 경찰청은 이를 현지 인터폴에 전달할 예정이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