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 어려운데 뒷사람 눈치까지”…어려움 호소하는 노인들

입력 2020-09-09 17:55 수정 2020-09-09 17:55
서울 시내 한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한 이용객이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하는 모습. 뉴시스

코로나19 이후 가속화된 비대면, 디지털화로 일처리가 빨라지고 간편해졌지만 노인들은 오히려 불편함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더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한 터치스크린 방식의 무인단말기(키오스크)의 경우 조작 방법이 복잡한데다 뒷사람 눈치도 보여 불편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국소비자원은 9일 최근 1년간 전자상거래나 키오스크를 통한 비대면 거래 경험이 있는 65세 이상 소비자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공개했다. 전자상거래 경험이 있는 고령소비자(59.7%)는 전자상거래 난이도를 평균 65.3점으로 평가했다. 100점 만점 기준으로 100점에 가까울수록 ‘매우 쉬움’을 의미한다. 반면 키오스크를 이용해본 고령소비자(81.6%)는 키오스크 이용 난이도를 평균 75.5점으로 평가해 전자상거래보다는 조금 더 쉽게 느끼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령소비자들은 키오스크를 이용하면서 불편한 점(중복응답)으로 ‘복잡한 단계’(51.4%) ‘다음 단계 버튼을 찾기 어려움’(51.0%) ‘뒷사람 눈치가 보임’(49.0%) ‘그림·글씨가 잘 안 보임’(44.1%) 등을 꼽았다. 노인들은 키오스크를 통해 결제까지 이르기도 힘들지만 그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되면 뒷사람 눈치까지 보여 주문을 마치기가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원이 키오스크 이용 경험이 없는 고령소비자 10명(65~69세 5명, 70세 이상 5명)을 대상으로 패스트푸드점, 버스터미널, 은행의 키오스크 이용 모습을 관찰했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대부분의 고령소비자가 키오스크의 조작방식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시간지연, 주문실패 등에 대해 심리적 부담감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70세 이상 고령소비자 5명 중 3명은 버스터미널 키오스크 이용 중간에 발권을 진행하지 못하는 모습이 확인됐다. 키오스크에 나온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발권까지 이르는 과정을 원활히 수행하지 못한 것이다. 패스트푸드점에선 70세 이상 고령소비자 5명 모두가 주문을 완료하지 못했다. 영문으로 표기된 ‘버거, 세트, 디저트’ 등 익숙하지 않은 메뉴 분류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키오스크 사용이 활발한 교통시설, 대형마트, 극장, 외식점포 다수 매장에선 키오스크 전담 직원이 상주해있거나 직원 호출벨이 설치돼있지 않았다. 앞선 4개 업종의 총 30개 매장에서 키오스크 사용법을 게시한 곳은 9곳뿐이었고, 고령자용 화면을 제공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그나마 대형마트 6개 매장에만 키오스크 전담 직원이 상주해있고, 직원 호출 버튼도 설치돼있어 안내를 받기 수월한 편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직원과의 대면 접촉을 줄이기 위해 키오스크를 도입하는 업종과 매장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65세 이상 고령자들은 도움을 요청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노인들은 기본적인 은행 업무부터 음식을 구매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문화생활을 즐기는 데 여러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고령자에 대한 IT교육과 고령자를 배려한 디지털 시스템 구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제는 노인의 경제적 빈곤만이 문제가 아니라 ‘디지털 빈곤’도 심각한 문제로 봐야 한다”며 “사회복지사들이 노인의 집을 방문할 때 그들의 안부만 살필 게 아니라 애플리케이션 사용법 등을 교육해 ‘맞춤식 복지’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원은 이번 조사 내용을 사업자에게 제공해 키오스크 운영 상황을 개선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관련 부처에는 ‘공공 단말기 접근성 가이드라인’에 고령자용 화면 제공 조항 신설과 고령자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버튼 크기를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할 것 등을 건의할 계획이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