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음악 세계를 풀어놓는 시간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함께 하는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듀오 리사이틀과 앞선 3월과 9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두 차례 연기된 베토벤 후기 피아노 소나타 리사이틀 등 무대가 준비돼 있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건 12월 1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예정된 김선욱의 첫 지휘 무대다. 김선욱은 9일 보도자료를 통해 “피아노와 지휘를 병행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기도 하다. 음악이라는 공통점은 있어도 전혀 다른 프로세스를 요구하기 때문”이라며 “30대 초반을 넘기며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늦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도전하고 싶어졌다”고 설명했다.
김선욱은 2006년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 및 아시아인 최초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며 세계 무대에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2008년엔 영국으로 옮겨가 활동하며 영국 왕립 음악원의 지휘 석사 과정을 2013년 마쳤지만, 지휘자 정식 데뷔 무대는 없었다.
2015년 본머스 심포니 상주 아티스트로 활동할 때 상임지휘자 카라비츠의 제안으로 처음 정식 지휘봉을 잡아본 게 전부다. 당시 포디엄에 올라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중 파드되를 앙코르곡으로 지휘했던 그는 “공연에 앞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을 피아노로 연주해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였는데도 너무 행복했다. 프로페셔널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첫 경험이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당초 본머스 심포니와 올 4월 지휘 데뷔 공연을 하려 했으나 코로나19에 내년으로 연기돼 올 12월 한국 무대가 김선욱의 첫 지휘 무대가 됐다.
지휘는 김선욱이 어릴 적부터 가꿔온 소중한 꿈이었다. 영국 왕립 음악원에 입학할 때 지휘자 정명훈과 김대진에게 추천서를 받았던 그는 “두 분 다 내 꿈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셔서 추천서를 부탁드렸다”며 “예전에 정명훈 선생님께 말러 교향곡 2번 스코어를 들고 찾아가 사인을 받았었는데, 그때 선생님께서 ‘네가 이 곡을 언젠가 지휘할 날을 기대한다’라고 써주신 기억이 난다”고 떠올렸다.
당차게 시작한 일이지만 피아노와 지휘 모두에 매진하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지휘 수업을 듣고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피아노 연습을 하는 날들이 반복돼 “과부하가 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김선욱은 “졸업 후 가장 기뻤던 건 피아노 연습을 아무 때나 편하게 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고 전했다.
김선욱은 피아노를 ‘작은 우주’에, 오케스트라를 ‘큰 우주’에 비유했다. 피아노를 잘 연주한다고 해서 지휘를 잘한다는 건 꼭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김선욱은 “피아노는 다른 악기보다 음역이 크고 화성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어 오케스트라 곡을 분석하는데 이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피아노는 혼자 연습하고 혼자 연주하지만, 오케스트라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겸손한 자세로 최선을 다해 준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휘 데뷔 무대는 KBS 교향악단과 브람스 2번 교향곡에 앞서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을 연주하고,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 지휘와 협연을 함께 한다.
12월 8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듀오 연주로도 무대에 서는 김선욱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3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이어 같은 달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세 곡으로 공연을 한다.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