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정권수립 72주년 기념일(9·9절) 행사를 조용히 치를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정주년(5년 단위로 꺾이는 해)이 아닌데다 ‘삼중고’(대북제재·코로나19·수해)로 대규모 열병식과 군중대회를 개최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9·9절 전후 핵실험 등 굵직한 무력도발을 감행한 전례가 있는 만큼 우리 군 당국은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가봉 등 10개국이 9·9절을 기념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축전을 보냈다고 지난 8일 짤막하게 소개했다. 김 위원장과 당·정·군 고위 인사, 해외 축사 사절 등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30여분 가량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진행한 2018년(정권수립 70주년)과 비교하면 크게 대비된다. 당시 북한은 대전차 장갑차와 152㎜ 자주포, 지대공 미사일(KN-06) 등 신형 무기를 잇달아 선보이며 주변국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동안 북한은 정주년에 맞춰 기념일의 수준을 조정해왔다. 정주년이 아닐 경우 주요 간부들이 모여 중앙보고대회 정도만 갖고 행사를 마무리하는 식이다. 북한은 정권수립 71주년인 지난해 대규모 열병식 등은 생략한 채 소규모로 행사를 치렀다. 올해 역시 정주년이 아닌 만큼 떠들썩한 행사 없이 조용히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코로나19 사태에 자연재해가 겹친 것도 행사를 소규모로 치르는 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수만명의 평양 시민이 동원되는 군중집회는 코로나19 집단 감염의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낙후한 북한의 보건 의료 체계로는 집단 감염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 1월부터 코로나19 차단 및 확산 방지에 사활을 건 북한 최고지도부로서는 많은 인원을 동원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울러 최근 집중호우와 태풍이 북한 전역을 할퀴고 가면서 정권수립일 기념보다는 피해 복구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김 위원장은 함경남도 수해 현장에서 공개서한을 띄우며 평양 내 노동당원들이 수해 복구에 나서줄 것을 호소했다. 북한은 이번 비와 태풍으로 최대 곡창지대인 황해도와 평안도가 물에 잠기거나 수천여채의 주택이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 내 여러 사정을 보면 중앙보고대회를 개최하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며 “김 위원장이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우리 군 당국은 북한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북한이 9·9절 전후 ‘깜짝’ 무력도발에 나설 수도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북한은 2016년 9월 9일과 2017년 9월 3일 5차, 6차 핵실험을 진행하며 한반도 주변국들을 놀라게 한 바 있다. 최근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함경남도 신포조선소를 찍은 위성사진 등을 근거로, 북한이 9·9절이나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에 무력도발에 나설 수도 있다고 암시했다. 군 관계자는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북한이 9·9절보다는 노동당 창건 75주년인 10월 10일 대규모 열병식을 갖고 새로운 전략무기를 공개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현재로서는 지배적이다. 특히 올해 노동당 창건일은 정주년에 해당돼 예년보다 성대히 치를 가능성이 높다.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는 지난 1일(현지시간) 북한이 열병식을 진행하는 김일성 광장을 본뜬 시설물들을 평양 인근의 미림비행장에 설치하고, 수천명의 병력을 동원했다고 전한 바 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