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국난 해결”·이시바 “새로운 일본”·기시다 “격차 해소”… 자민당 총재 출마

입력 2020-09-08 18:01 수정 2020-09-08 18:29
왼쪽부터 차례로 스가 요시히데(71) 관방장관, 기시다 후미오(63) 자민당 정조회장, 이시바 시게루(63) 전 자민당 간사장

장장 7년 8개월을 집권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빈 자리를 이어 받는 자민당 총재 선거가 스가 요시히데(71) 관방장관, 이시바 시게루(63) 전 자민당 간사장, 기시다 후미오(63) 자민당 정조회장의 3파전으로 치러지게 됐다.

자민당은 8일 아베 총리의 사임에 따른 총재 선거를 고시하고 후보 등록을 받았다. 이미 입후보의 의사를 밝혔던 스가 장관, 이시바 전 간사장, 기시다 회장이 고시 직후 각각 지지 의원 20명 이상의 추천을 확보해 후보 등록을 마쳤다. 자민당 총재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최소 의원 20명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세 후보는 이날 오후 공동 기자회견을 여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미 자민당 주요 파벌 7개 중 5군데와 무당파 의원들의 지지를 확보한 스가는 이날 선거 출정식에서 “천학비재(학문이 얕고 재주가 보잘 것 없음)지만 어떻게든 일본의 조타수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가 의원 중심의 약식선거로 치러져 당선이 유력한 상황에서 겸손한 면모를 보인 것이다. 그는 “국난에 정치 공백이 있을 수 없다. 코로나19 경제대책에 종사한 누군가가 입후보해 국난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 출마를 결심했다”고 강조했다.

스가는 아베의 2012년 재집권 후 관방장관에 임명돼 7년 8개월 내내 손발을 맞춘 인물로 ‘아베 정권의 확실한 계승’을 내걸고 있다. 아베와 이념·정책 등에서 가장 유사한 인물로 평가된다. ‘도련님 정치’가 횡행하는 일본 정치에서 보기 드문 흙수저 출신으로 지역구 세습 없이 국회의원 비서로 시작해 관방장관까지 오른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지난해 일본의 새 연호 ‘레이와’를 발표하면서 ‘레이와 아저씨’라는 별명을 얻는 등 대중적 인지도도 갖고 있다.

‘아베의 영원한 정적’으로 불리는 이시바 전 간사장은 출정식에서 “정치에는 설득과 공감이 필요하다”며 “새로운 일본을 만들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이 싸움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이시바는 자민당 내부에서 아베 정권을 비판하며 야권이 변변찮은 일본 사회에서 사실상 야당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올해에도 아베의 코로나19 실책 등을 앞장서 꼬집어 대중적 인기가 높다. 지난해 말부터 일본 차기 총리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렸다. 총리에 오를 시 아베 정권의 3대 부정부패 사건인 ‘모리토모 스캔들’ ‘가케학원 스캔들’ ‘벚꽃놀이 스캔들’을 진상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높은 대중적 인기와 달리 의원 지지세가 약해 이번 선거에서 총리에 오를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베 역시 주변에 “내 후임으로 이시바만큼은 안 된다”고 말할 정도로 그에게 반감을 지니고 있다. 아베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스가가 출마를 선언한 이후에는 국민 여론조차 스가 쪽으로 옮겨가면서 총리 선호도 조사에서 2위로 내려앉았다.

정치 명문가 출신이자 유서 깊은 파벌 ‘고치카이’를 이끌고 있는 기시다는 출정식에서 “보수 본류의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격동의 시대에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분단에서 협력’이라는 슬로건 하에 아베 정권에서 확대된 빈부격차를 바로 잡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비둘기파로서 매파인 아베 내각과 다소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아베가 당초 후계자로 염두에 둔 인물은 기시다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기시다는 한국으로 치면 정책위의장에 해당하는 요직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비전과 정치력을 드러내는 데 실패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관련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드러내며 역량 부족만 드러냈다는 평가다. 대중 인지도가 낮고,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자민당 의원들 사이에선 기시다의 얼굴로는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얘기도 돌고 있어 이시바와 마찬가지로 총리에 오를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