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 무덤’ 됐는데…모리셔스, 돌연 “일본 탓 아냐”

입력 2020-09-08 17:53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모리셔스 해변가에 돌고래 한 마리가 죽은 채 떠밀려와 있다. 지난달 6일 일본 화물선 와카시오호(10만1932t)는 1000t이 넘는 중유를 모리셔스 해역에 유출해 생태계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로이터 연합뉴스

인도양 ‘천국의 섬’ 모리셔스가 일본 화물선의 기름 유출로 천문학적인 해양오염 피해를 본 가운데 프라빈드 주그노트 총리가 돌연 일본 정부에 사고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의 통화에서 나온 발언으로 360억원의 배상금을 요구한 일주일 전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다.

8일 NHK와 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전날 주그노트 총리는 모테기 외무상과의 통화에서 “일본 정부가 이번 사고에 대한 책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원해준 것에 감사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통화는 일본 정부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화물선의 기름유출 사고로 폐사한 돌고래의 지난달 26일 모습. 입 안이 기름으로 가득하다. EPA 연합뉴스

인도양 남부 모리셔스 해역에 좌초된 일본 화물선 와카시오호에서 지난달 11일 시꺼먼 기름이 유출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모테기 외무상은 통화 뒤 기자들과 만나 “주그노트 총리는 기름 유출로 피해를 본 모리셔스 경제와 생태계를 되돌리기 위해 일본 정부에 지속적인 지원을 요청했다”며 “이번 사태를 심각하며 바라보며 해상 안전 강화와 지역어업 공동체 활성화 조치 등 장기적인 지원을 약속했다”고 전했다. 통화 당시 일본 정부의 구체적인 지원액이 논의된 것은 아니라고도 덧붙였다. 모리셔스 정부가 일본 측에 배상을 요구하던 일주일 전과는 달리 누그러진 입장을 취한 셈이다.

앞서 모리셔스 정부는 일본 나가사키기선이 소유한 와카시오호(10만1932t)가 좌초 12일 만인 지난달 6일 기름 유출 사고를 내자 일본 정부에 12억 모리셔스 루피(약 32억엔·약 360억원)의 어업지원금 배상을 요구한 바 있다. 당시 1000t이 넘는 중유가 연안생태계로 흘러들어 돌고래 등 해양 동식물이 떼죽음을 당했고, 주민들의 삶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인구 130만명의 섬나라 모리셔스는 관광업을 비롯해 경제 대부분을 연안 생태계에 의존한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모리셔스 해변가에 돌고래 한 마리가 죽어 있다. 인근 해변에서 여러 마리의 돌고래가 떼죽음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EPA 연합뉴스

사고 화물선 와카시오호의 선미부 모습. AP 연합뉴스

물론 주그노트 총리의 말처럼 이번 사고의 배상 주체는 일본 정부가 아니다. 국제해사기구(IMO) 조약상 해양오염에 대한 배상 책임은 선주(배의 주인)인 나가사키기선이 져야 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에는 선주나 배를 빌려 운항한 미쓰이상선(MOL)이 선박과 선원을 제대로 관리했는지 등을 감독할 책임이 있다. 주그노트 총리의 발언이 일본 측에 면죄부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일본 연구진이 지난 4일 기름유출 사고가 벌어진 모리셔스 해역에서 오염 평가 작업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현재 일본 정부는 3개의 재난구호팀을 현지로 급파해 방제작업을 지원하고, 피해액을 추산하고 있다. 복원에만 수십 년이 걸린다는 예상이 나올 정도로 피해 규모가 커 선사의 손해배상액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선주 측은 기름 유출 피해 배상액으로 최대 10억 달러(1조1845억원)를 지급하는 해상보험에 가입된 상태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