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의대생 86%가 응시를 거부한 제85회 의사 국가시험(국시)이 시행된 8일 시험장인 서울 광진구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 앞은 조용했다. 평년 기준 하루에 3번 최대 108명의 의대생들이 시험을 보곤 하지만 이날은 상당수 의대생들의 응시 거부로 낮 12시35분에 시험이 한 번만 진행됐다.
일부 응시생들은 취재진들을 피해 국시원 관계자의 인솔 하에 입장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시원 관계자는 “단체 행동을 이탈하고 국시에 응시한 의대생들이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힐 것을 두려워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실기시험은 쉬는 시간을 포함해 2시간30분 동안 진행됐다. 내년 1월 필기시험까지 통과하면 의사 면허가 발급된다. 국시원은 “오늘 의대생 6명이 실기시험에 응시했다”며 “실기시험이 종료되는 다음달 20일까지 하루 10명 내외의 의대생만 시험에 응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험을 치르지 않은 2700여명의 의대생들은 국시 거부를 넘어 다시 정부에 대한 투쟁을 벼르고 있다. 의대생들은 “국시 구제책을 마련해 달라고 한 적이 없다”며 대한의사협회 등에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하는 투쟁을 지속할 것을 호소했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은 전날 입장문에서 “학생들은 한 번도 의사 국시 구제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면서 “정부와 집권여당이 선배들이 제시한 최소한의 조건을 걸고 약속한 합의조차 파기했다. 악법 철회를 위해 다시 뭉쳐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은 지난 6일 만장일치로 국시에 응시하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의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역시 전날 국시를 거부한 의대생들이 불이익을 받을 경우 지난 4일 정부와 했던 합의를 파기하고 진료 거부에 다시 돌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연주 대전협 부회장도 “피해 학생이 생기는 즉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단체행동 수위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두 차례나 시험 재접수 일정을 연장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추가 접수 등 시험 거부 의대생들에 대한 구제책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을 통해 “의협과 대전협에서 요구한 구제책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의대생들이 스스로 학업에 복귀해 시험에 응하겠다고 입장을 바꾸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집단 응시 거부로 인해 내년 인턴 의사 수가 줄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수련병원과 함께 대응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의대생들이 시험을 보겠다는 의사만 확실하면 상황이 극적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이윤성 국시원장은 이날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의대생들이 시험장에 복귀한다는 의사표현과 복지부의 (시험 접수) 허가만 있으면 일정을 조정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