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도서정가제 개정 시한을 앞두고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민 여론을 좀 더 검토하겠다며 현행 수정 의사를 내비치자 동네 책방을 비롯한 도서·출판업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온·오프라인 서점의 책 할인율을 15%로 제한한 것으로, 2014년 개정된 이후 3년마다 유지 여부를 결정한다. 골자는 전국 어디에서 책을 구매해도 출판사가 정해놓은 동일한 금액을 지불하는 것이다. 동네 서점과 소규모 출판사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11월 20일 도서정가제 개정을 앞두고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출판계·유통계·소비자단체와 함께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도서정가제 개선을 논의해 왔다. 16차례 협의 끝에 크게 3가지 부분에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신간이 아닌 오래된 책의 값을 다시 책정할 수 있는 기준을 기존 18개월에서 12개월 이상으로 완화 ▲지역 서점 보호를 위해 국가·지자체 구매도서 할인율을 최대 10%로 제한 ▲웹툰·웹소설의 경우 정가 표시에 가상화폐 허용 등이다.
그러나 최근 문체부가 관련 논의를 중단하고 합의안 재검토 의사를 밝혔다. 문체부는 “민관협의체 합의 사항을 파기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며 “논의 내용을 대국민 대상으로 공개하고, 폭넓은 의견 수렴을 거쳐 사회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개선안을 마련하고자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비싼 책의 가격과 제한된 할인 혜택에 불만을 가진 국민 여론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동네 책방을 중심으로 문체부가 기존 합의안을 뒤엎고 제도를 전면 수정하거나 폐지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책방넷)는 문체부의 재검토 결정을 두고 도서정가제 ‘개악’ 의지를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7일부터 평일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또한 전국 동네 책방 대표들은 SNS에서 ‘#도서정가제가_사라지면_동네책방도_사라집니다’ ‘#완전도서정가제를지지합니다’ 등의 해시태그를 달아 도서정가제 유지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일부 그림책 작가들과 출판 관계자 또한 도서정가제를 유지해 달라는 각종 포스터를 제작해 SNS에 게시하는 등 책방넷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한국작가회의도 지난달 31일 성명서에서 “도서정가제는 시장경제 논리로부터 출판계 전체의 다양성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방어막”이라며 “서점과 출판계에 만연했던 가격 경쟁을 완화하는 데 일조했으며, 전국적으로 개성 있는 출판사와 독립서점 등이 늘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1일 한국출판인회의가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전국 2500개 출판사와 서점 2100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도서정가제 인식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서점 71.6%, 출판사 66.7%가 도서정가제를 지지했다. 또한 도서정가제의 개정 방향에 대해 ‘강화’(55.6%)와 ‘유지’(27.3%)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약 84%를 차지했고, ‘완화’ 의견은 13.2%에 그쳤다.
이렇듯 동네 책방과 일부 출판사, 작가들이 제도 유지 혹은 나아가 현행 15%의 할인율도 없애는 ‘완전 도서정가제’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도서정가제 폐지를 청원합니다’는 국민청원이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바 있다.
당시 청원인은 “지식 전달의 매체로서 책은 언제나 구할 수 있는 곳에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되어야 한다”며 “부담스러운 가격에 도리어 독자에게 책을 멀어지게 하고 있는 도서정가제의 폐지를 청원합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청원 답변에서 “이번 청원은 정부가 도서정가제를 비롯하여 변화하는 출판산업에 맞춰 정부의 진흥정책에 대해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시는 국민 여러분의 따끔한 질책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국민 의견수렴을 통해 개선방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많은 동의를 얻었던 이 청원이 문체부의 이번 최종 합의안 서명에 부담을 준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정부가 지난 6월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도서정가제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도 문체부의 재검토 원인 중 하나다. 현행 도서정가제에 대한 긍정 응답이 36.9%로 부정 응답(23.9%)보다 높았지만 긍부정을 나타내지 않은 응답이 39.2%로 가장 많아 제도 수정 및 개선의 필요성이 요구됐기 때문이다.
문체부는 도서정가제 개정안에 대해 기존 합의안과 업계 의견, 국민 여론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11월 이전까지 최종안을 마련해 발표할 계획이다.
김수련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