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미국인으로서 국무부 고위 외교관으로 활동 중인 줄리 정 국무부 서반구 담당 수석부차관보가 24년간 공직생활을 해온 소회를 밝혔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8일 보도했다. 정 부차관보는 첫 근무지였던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북·미 협상을 위해 북한을 방문했을 때조차 “진짜 미국인이냐”는 질문을 받았었다고 전했다.
VOA에 따르면 정 부차관보는 미국외교관협회가 발행하는 9월호 저널에 ‘진짜 미국 외교관 되기’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미국외교관협회는 전현직 미 외교관으로 이뤄진 단체로 회원은 1만7000여명이다.
정 부차관보가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건 1996년 중국 광저우에서다. 당시 정 부차관보는 비자 발급 업무를 맡았는데 비자를 거절당한 중국인들이 찾아와 “진짜 미국인과 얘기하고 싶다”고 말한 게 수백 번이었다고 한다.
북한 관리들도 그에게 ‘진짜 미국인’ 여부를 확인하려 했다. 국무부 한국과에 근무하던 당시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했는데, 북한 관리들이 회담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자신을 향해 한국어로 “진짜 미국인이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정 부차관보는 북한 관리들이 소주를 함께 마시고 노래방 기계로 노래를 부르면서 자신에게 ‘그 미국인들’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곤 했었다고도 말했다.
정 부차관보는 기고문에서 “(북한 지역 출신인) 내 할아버지가 6·25 전쟁의 혼란 속에서 부인과 자녀들과 헤어진 뒤 휴전선이 막히며 그들과 영영 헤어지게 됐다는 사실을 북한 관리들이 알았을지 궁금했다”며 “또 할아버지는 자신의 손녀가 ‘제국주의 적대자’를 대표해 미국 외교관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지도 궁금했다”고 적었다.
정 부차관보는 제2차 북핵 위기의 단초가 된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전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의 평양 방문 당시 6년차 외교관으로서 배석한 바 있다. 그때 회담에서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미국 대표단에게 고농축 우라늄 개발을 시인하는 듯한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켰었다.
정 부차관보는 배석한 데이비드 스트로브 당시 국무부 한국과장, 김동현 국무부 통역과 함께 강 제1부상의 한국어 발언을 복기해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북한 측 통역을 맡았던 인사는 현재 북·미 협상의 실무 책임자인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다.
정 부차관보는 “진짜 미국인이냐”는 질문 외에도 “진짜로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도 받았다고 전했다. “캘리포니아 출신”이라고 답해도 상대방이 충분히 만족하지 않으면 가족의 이민사를 상세히 설명해준다고 한다.
정 부차관보는 5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의 아버지는 공장에서 시간당 4.25달러를 받고 일했고 어머니는 저녁시간에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접시를 닦았다. 22년 뒤 아버지는 자신이 일해온 회사의 사장이 됐고 어머니는 도서관 사서가 됐다는 것이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