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이는 동안 2천 뛰더라” 30대가 ‘영끌매수’ 나선 이유

입력 2020-09-08 00:05 수정 2020-09-08 00:05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세대는 단연 30대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30대의 수도권 아파트 매수가 줄을 이었다. 급기야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김현미 장관 입에서 ‘30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 매수 안타깝다’는 말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통계도 이런 흐름을 뒷받침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의 33.4%(5345건)를 30대가 사들였다. 6월에도 전달보다 2.9배 많은 3601건(전체의 32.4%)의 서울 아파트가 30대 수중에 들어갔다.

30대의 패닉바잉 이면에는 “영끌매수보다 분양”을 외친 김 장관의 머릿속과 다른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현재 30대가 청약을 받아 내 집을 마련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지난달 31일 부동산 리서치업체 ‘리얼투데이’의 조사 결과 지난 7~8월 분양한 서울 아파트의 청약에 당첨된 이들의 최저 청약가점 평균은 60.6점으로, 올 상반기(55.9점)보다 4.7점이나 올랐다. 반면 30대 실수요자는 4인 가구(부부와 자녀 2명) 기준 최대 청약가점이 57점에 불과하다.

한편에서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세금폭탄에 쏟아지는 다주택자의 매물을 30대의 ‘패닉바잉’(충동구매)이 고점에서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걱정을 30대가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지금 집을 사야 하는 그들 나름의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국민일보는 최근 수도권에 집을 구매한 30대 청년 3명을 인터뷰해 이들의 이야기를 1인칭으로 재구성했다. 지방 출신인 미혼 2명과 기혼 1명이다. 이들은 아파트값에 정권의 명운을 건 문재인정부에서 왜 자신들이 ‘영끌로’ 아파트를 샀는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6일 서울 강북구 북서울꿈의숲 전망대에서 바라본 강북구와 그 일대 아파트 단지의 모습.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최근 3개월 동안(6∼8월) 서울에서 아파트값이 가장 많이 오른 지역은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박영철씨(가명·33·직장생활 6년차)

“나는 소위 말하는 ‘부린이’(부동산과 어린이의 합성어)였다. 부동산·주식 이런 건 하나도 모른 채 적금·예금만 들면서 살아왔다. 그렇게 한 푼, 두 푼 모으다 보면 언젠가는 3억∼4억원을 모으고, 그러다 언젠가는 내 집을 살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생각이었다. 사실 이것저것 생각한다는 게 너무 귀찮기도 했다. 현실을 외면한 채 조금 순박하게 살아왔던 것 같다.

지난해 서울로 직장을 옮기고 나니 상황이 달라지더라. 월세에 관리비까지 매달 70만원이 깨졌다. 게다가 직장이나 주변에서는 나이도 있고 결혼할 때도 됐으니 전세 말고 그냥 집을 사라는 말을 많이 하더라. 뉴스에서는 ‘연일 집값이 오르네’ ‘전세가 없네’ ‘앞으로는 월세 시대가 될 거네’ 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피 같은 월급이 쏙쏙 빠져나가는 걸 몇 개월 지켜보니 ‘무리해서라도 서울에 아파트를 사자’는 결심이 섰다.

생전 펴보지도 않던 부동산 투자 관련 책부터 1권 샀다. 서점에서 쳐다본 적도 없는 책들이었다. 필수 앱으로 통하는 ‘호갱노노’와 포털의 부동산 사이트를 뒤져가며 매물을 살폈다. 관련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 ‘눈팅’도 했다. 내가 찜한 매물이 사라질까 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불안감으로 보낸 날들이었다.

앱 '호갱노노' 화면. 호갱노노 캡처

7월 초쯤 처음 서울 외곽으로 부동산 임장(해당 지역을 둘러보러 간다는 의미의 업계 은어)을 다녀왔다. 중개업소 사장이 옆에서 자꾸 ‘지금 안 사면 다 없어져요’ ‘집주인들이 매물 다 거둬들여요’라고 채근했다. 7·10 부동산 대책이 나오기 직전이라서 엄청 압박을 주더라. 직접 가서 본 매물은 대부분 곰팡이가 잔뜩 핀 무슨 소굴 같은 집들이었다. 우선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2주 만에 내가 본 집의 호가가 2000만원이 뛰더라. 주택담보대출과 수중에 쥔 돈을 합쳐도 감당할 수 없는 집값이었다. 포기했다.

자꾸 신경이 쓰였다. ‘내 주제에 무슨 집이야. 그냥 전월세나 살자’는 생각이 들 때마다 정부의 부동산 후속 조치가 쏟아졌다. 서울의 전셋값은 내려갈 줄 몰랐다. 다시 초조해졌다. ‘누구나 월세 사는 세상이 온다’는 정치인의 말에 분노가 치밀었다. 서울이 안 되면 수도권에라도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주변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딱 두 번 집을 보고, 1주일 만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자금은 주택담보대출 1억원 중반대에 그동안 번 1억원이 조금 안되는 돈을 더해 마련했다. 그렇게 지난달 생애 처음으로 수도권 역세권에 20평대 아파트를 샀다. 아마도 지난 몇 개월 정부 대책이 나올 때마다 집값이 오르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과감한 결정이었다.

박영철씨(가명·33)가 현재 살고 있는 월셋집. 본인 제공

지방 출신으로 낯선 수도권에 내 집이 있다는 안정감은 생각보다 컸다. 매달 60만원 남짓의 대출금만 갚으면 되기에 부담도 적었다. 패닉바잉이니 투자니 그런 건 잘 모르겠다. 나는 실거주를 위해 집을 샀다. 20, 30대 청년 중에 먼 미래의 투자가치만 바라본 채 그 많은 대출을 감당해가며 집을 산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안정감을 위해 집을 산 사람이 많을 거다.

-김영준씨(가명·31·직장생활 2년차)

“대학 입학과 함께 서울에 입성했다. 집 없는 민달팽이로 스무 살 때부터 주거비 압박에 시달렸고, 하숙·원룸·셰어하우스 등 안 살아본 집의 형태가 드물 정도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지냈다. 매달 잠만 자는 장소에 적게는 30만원에서 많게는 60만원까지 돈이 나가는 게 큰 압박이었다. 과외를 하든 아르바이트를 하든 주거비를 벌어야만 했다. 지금도 3년째 전세살이 중이다.

나도 그렇고, 청년 다수가 전월세를 살고 있다. 0%대 저금리 시대다. 주기적으로 들어가는 월세와 장기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데 비용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전세가 소멸되고 있다는 위기감도 있었다. 수도권에 뿌리내린 청년들이 거처를 마련하는 과정은 원래 전세를 살면서 목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조그만 집이라도 사 시작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전세가 사라지거나 터무니없이 오르면 이마저도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솔직히 직장생활 2년 언저리인 내가 무슨 목돈이 있겠나. 대출을 잔뜩 끼고 지난달 경기도에 20년 넘은 복도식 아파트를 장만했다. 집값의 70%는 주택담보대출이고, 나머지는 현재 입주해 있는 집의 전세금으로 충당했다. 당장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무리해서라도 빚을 내 집을 사서 가치가 조금씩 오르면 또 이 집을 바탕으로 내가 원하는 서울의 중심지로 들어갈 수 있다. 그게 중요하다. 이번에 산 집은 당장 거처를 마련하는 의미도 있지만, 내 노동 수익보다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나중에 중심부로 이동하는 속도를 단축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담고 있다.

우리 세대는 만나면 주식 얘기나 집 얘기를 많이 한다. 무슨 주식을 살지, 집을 어떻게 살지, 지금 집을 살지 말지 그런 얘기들이다. 돈의 가치가 크게 떨어지면서 집이든 뭐든 실물을 가진 사람이 위너(승자)가 되는 세상이 와버렸다. 현재 가진 걸 쥐어짜서라도 실물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다. 그게 내 미래를 위해 훨씬 유리하다. 내가 무리해서 집을 산 이유다.”

-이철수씨(가명·34·직장생활 7년차)

“나는 지방 출신이다. 대학을 서울로 오면서 맞닥뜨린 현실은 참혹했다. 첫 자취방은 반지하였는데 옷걸이에 걸어둔 옷에 이틀도 안 돼 녹말 같은 곰팡이가 피어올랐다. 취업을 위해 학원에 다닐 때는 고시원을 전전해야 했다. 지방에서 친누나가 잠시 취업 준비를 위해 서울로 왔을 때는 투룸을 구해야 했다. 투룸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는 걸 느꼈다.


그 이후 서울에 아파트를 마련하기까지 과정은 전쟁 같았다. 시작은 원룸 전세였다. 과외로 번 돈과 누나가 보태준 돈, 월급 등을 모두 합쳐 처음에는 6000만원 원룸 전세를 얻었다. 직업 관련 기관에서 빌려주는 대출로 3000만원씩 두 번 빌려 전세를 두 차례 옮겼다. 전세를 옮길 때마다 빚을 갚는 게 곧 저축이었다. 주위에는 월세를 사는 친구들도 많았다. 별달리 좋은 환경이 아닌데도 전세를 선택한 건 한 달 50만∼60만원 월세를 내고 나면 돈을 모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여전히 곰팡이 피는 집이었지만 월세가 아닌 전세를 구할 수 있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전세를 옮길 때마다 다음 들어올 사람은 내가 구해야 했다. 이사 당일까지 보증금을 주지 않는 주인들도 있었다. 고성이 오가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2017년 무렵은 박근혜 정부가 ‘빚내서 집을 사라’고 부추기던 때였다. 정부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다. 그해 10월 디딤돌 대출이라는 제도를 이용해 생애 첫 아파트를 샀다. 결혼하지 않은 이도 만 서른 살이 넘으면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서울 서대문구, 관악구, 동작구 등의 30년쯤 된 구축 아파트들을 3억원대에 살 수 있었다. 디딤돌 대출 한도인 2억원과 신용대출 2000만원을 보태고 당시 갖고 있던 오피스텔 전세를 빼 3억원대 중반의 자금을 마련했다. 그리고 생일이 있던 그 주 토요일에 서울 시내 부동산에 가서 딱 한 번 집을 보고 계약금을 걸었다. 집값이 한창 오를 때라 두 번 집을 보러 가면 매물을 거둬들이는 주인들도 있었다.

서울 송파구 일대의 아파트단지 모습. 연합뉴스

그 집을 잡은 덕에 이후 집값 폭등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 낡고 주차장도 비좁았던 집이었지만 1년 뒤 이 집에서 신혼을 꾸렸다. 강남 집값이 얼마든 상관없었다. 내가 누울 공간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이후 아내 회사가 이사를 갔다. 아내의 출퇴근 시간을 줄여주기 위해 이사를 가기로 결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지난 4월 초 잠시 집값이 주춤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낡은 집을 팔고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서울 마포구의 아파트를 구매했다. 6억원대 초반으로 오른 전 아파트를 팔았고 여기에 대출 1억원가량을 보탰다. 신용대출도 최대한도로 더 받았다.

4·27 대책 발표 전 가계약을 건 것은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 대책 발표 후 코로나19로 떨어지던 집값이 오히려 반등했다. 대출을 옥죄었기에 직장이 탄탄한 젊은층은 집을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한 듯했다. 35년 원리금 균등 상환 주택담보대출에 신용대출 이자까지 포함해 한 달 130만원이 고정 지출이다. 아내와 나 둘 중 하나가 육아휴직에 들어가면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 것이라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주변의 친구들을 생각하면 행복한 고민이라는 걸 안다. 매번 신용과 담보의 한도까지 대출을 받아 낡고 다 쓰러져가는 서울의 아파트를 잡은 건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주변의 후배들에게 늘 말한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사, 누가 뭐라든.”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