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전두환·노태우 동상 철거 등 군사독재 청산작업이 늦어지고 있다. 각계각층의 주민들이 참석하는 공개토론회 등을 개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5·18 기념재단은 “1980년 당시 유혈 무력진압 책임자인 전씨와 노씨의 충북 청주 청남대 동상 철거작업이 지연되고 있다”고 7일 밝혔다.
충북도가 4억여 원을 들여 2015년 제작·설치한 두 동상은 각각 2.5m 높이다. 과거 대통령 별장이던 청남대 내 1.5㎞와 2㎞ 길이의 전두환 대통령길과 노태우 대통령길 입구에 세워져 있다.
충북도는 지난 5월 전·노씨 동상과 청와대 본관 60% 크기로 2015년 6월 준공한 대통령기념관의 기록화를 없애기로 했다. 두 사람 이름이 붙은 산책로는 명칭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동상·산책로·기록화 철거와 명칭변경을 위한 지방의회 차원의 법적 절차가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라 수개월째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충북도의회가 법적 근거가 되는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안’을 제정하려면 다수의 주민과 시민단체 대표 등이 참석한 공개 토론회를 먼저 갖고 의견수렴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런데 장기간 몰아닥친 코로나19 여파로 공개 토론회 개최가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충북도의회는 당초 지난 3일로 예정한 조례안 상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조례안에는 ‘전직 대통령에게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기념사업을 중단·철회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전·노씨는 지난 1997년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죄로 무기징역과 징역 17년형이 확정됐다.
전씨의 고향인 경남 합천 일해공원의 명칭 변경도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경남도는 지난 5월 ‘적폐 청산과 민주사회 건설 경남운동본부’의 요구를 수용해 전씨의 아호를 붙인 일해공원의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하지만 명칭 변경 논의는 코로나19와 집중호우에 따른 수해복구 작업으로 후속절차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합천군유림회 등이 “전두환 재임 시절 태평성대를 구가했다”며 반대하고 나선 것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2004년 8월 68억원을 들여 ‘새천년 생명의 숲’으로 문을 연 뒤 2007년 명칭을 바꾼 일해공원은 합천 황강주변 5만3724㎡ 면적이다.
전남 장성 상무대 일명 ‘전두환 범종’ 처리문제도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상무대 군 법당 내 전두환 범종은 전씨가 1981년 자신의 이름을 새겨 당시 상무지구 상무대 내 무각사에 기증했다. 이후 상무대 이전과 함께 장성으로 옮겨졌다.
5·18기념재단과 5월 단체들은 올 들어 육군과 회동을 갖고 이 범종의 구체적 처리문제를 논의하려고 했으나 코로나19 사태가 수그러들지 않아 일정을 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반면 인천 흥륜사 정토원에 걸렸던 전두환 친필 현판은 최근 교체된 것으로 파악됐다. 5·18기념재단과 인천 시민단체 등은 정토원 현판글씨 교체를 요구해왔으나 흥륜사는 그동안 교체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이를 미뤄왔다.
전씨가 집권할 당시 남긴 흔적은 인천상륙작전기념관 현충탑, 국립중앙도서관 국민독서교육의 전당, 서울중소기업중앙회 건물 앞 주춧돌 등에 친필 글씨 등으로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다.
5·18기념재단 관계자는 “전·노씨의 군사독재 정권 흔적지우기는 코로나19와 상관없이 역사바로세우기 차원에서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