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대학 폐교는 ‘정해진 미래’입니다. 저출산으로 학령인구가 줄고 있어 사라지는 대학은 앞으로 더 많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경쟁력이 부족한 대학은 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부실한 대학도 누군가에는 생계가 달린 일터입니다. 연쇄적인 대학 폐교는 사회적 문제가 될 것입니다. 국민일보 취재팀은 대학이 폐교되는 현장을 살펴보고 5회 기획기사를 준비했습니다. 2회에서는 지난 봄 자진폐교를 신청한 군산 서해대의 마지막 여름 모습을 전합니다.
형광등이 모두 꺼진 군산 서해대학 본관 1층 로비는 한낮에도 어둑했다. 빛이 새어 나오는 왼편에 학생종합지원센터가 있다. 직원 두세 명이 자리에 앉아 있거나 돌아다녔다. 듬성듬성 빈자리가 직원 숫자보다 많았다. 교직원 서모(50)씨는 “제가 1970년생이에요. 폐교되면 당장 실업자가 되니 달갑지만은 않죠. 지금 월급 2~3년 못 받는다 해도 이런 직장이나마 다니고 있는 게 조금은 낫지. 당장 나가면 돈벌이야 어떻게든 하겠지만 마땅히 오라는 데가 있겠어요?”라고 말했다.
학교가 문을 닫으면 건물과 각종 기자재는 모두 재산으로 잡혀 적당한 값이 매겨지고 언젠가 팔릴 것이다. 그곳에 사람이 남는다. 이들에게 남는 것은 10~20년을 보낸 일터가 사라진 뒤에도 살아가야 할 막막한 시간이다.
그럼에도 서해대는 지난 3월 교육부에 자진폐교를 신청했다. 남은 직원 9명이 먼저 뜻을 모아 자진폐교 목소리를 냈다. 이후 교수 24명이 모두 폐교에 동의했다. 마지막으로 서해대 이사회가 회의를 열고 만장일치로 폐교 안건을 통과시켰다. 교직원들은 교육부의 처분을 기다리며 묵묵히 남은 업무를 하고 있다. 이들은 왜 직장을 잃는 것을 감수하고 자진폐교를 선택했을까. 취재팀은 지난 7월 30일과 8월 27일 두 차례 서해대를 방문했다.
“지역 전문대 중 선두주자였어요”
교직원 정모(46)씨는 1995년 서해대에 입사했다.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인다는 느낌이었죠. 방송반 애들이 아침 방송을 하고, 학생들은 9시 수업 맞춰서 정말 많이 올라오고….” 서해대는 1973년 12월 군산전문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은 뒤 이듬해 3월 교문을 열었다. 군산실업전문대학(1977년), 군산전문대학(1993년)을 거쳐 1998년 현재 서해대학이라는 교명으로 정착했다.
군산 토박이 교직원들의 기억 한편에는 한때의 자부심이 서려 있다. 서씨는 “(전북) 지역 전문대로선 선두주자였죠. 인력도 많이 배출했고요”라고 말했다. 고모(47)씨는 “IMF 터지기 전에는 이자가 비쌌잖아요. 그때는 교비가 은행 이자만으로 교직원들 급여 줄 수 있었다고 했을 정도로 많았대요. 새 건물 짓고, 교수님들 1년에 1번씩은 국내외로 교육받으러 갔으니까요”라며 웃었다.
‘잘나갈 때’ 서해대 재학생은 4000여명이었다. 지방 전문대학으로는 꽤 많은 숫자였다. 올해 재학생은 200여명이다. 서해대는 오랫동안 굶주린 신체가 생존을 위해 최소 기능만 유지토록 변형하듯 변해 있었다. 학교 시계탑의 시침과 분침은 오전인지 오후인지 알 수 없는 8시 43분에 멈춰 있었다. 그곳에서 바라본 학교 잔디 구장은 풀과 꽃이 무성하게 방치돼있었다.
서해대에는 5개 건물이 있다. 교내에 본관·광영관·성원관·신실관이 있고, 교외에 생활관(기숙사)이 있다. 현재 사용하는 건물은 본관과 성원관뿐이다. 학생이 줄었고, 전기요금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탓이다. 고씨는 “지금은 웬만하면 본관 건물에서 다 해결해요. 연구실도 본관 쪽으로 많이 옮겼어요”라고 설명했다. 얼마 전엔 전기요금이 밀려 전기가 끊길 뻔했다. “3개월간 전기세가 밀렸어요. 5~6월쯤에 한전에서 전기 끊는다고 해서 급하게 다른 비용 빼서 냈을 거예요.”
정문 앞 경비초소에는 경비원이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지난해 7월까지 주·야간 파트타임으로 나뉜 경비원들이 있었지만 이 또한 모두 비용이었다. 이용민 학사운영처 팀장은 “급여도 만만치 않으니까 저녁에 한 분만 두기로 한 거죠”라고 말했다.
학교 세가 점차 기울기 시작한 건 2010년쯤부터다. 이 팀장은 “2010년 넘어가니까 학생 수가 확 줄었어요. 학령인구가 줄어든 게 제일 심하고, 그때부터 취업 잘 되는 학과 선호가 심해졌어요. 저희는 인문계열이 대부분이었거든요”라고 말했다. 그즈음 내부 비리도 불거졌다. 2010년 온정섭 당시 총장이 교수 채용 청탁 대가로 억대 금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이듬해 대법원에서 징역 1년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교직원 정씨는 “개인 문제였는데 뉴스까지 나오니까 학교에 영향이 없진 않았어요”라고 했다.
“학교를 다시 살리는 방법은 제3자가 학교를 인수해서 재투자를 하는 방식밖에 없다고 해서 2014년에 들어온 게 이중학 전 이사장이에요.” 이용민 팀장이 말했다. 새 이사장 영입은 학교가 기우는 데 쐐기를 박았다. 2015년 8월 이 전 이사장이 학교자금 146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교비 횡령을 은폐하기 위해 금융기관 입금 내역과 예금잔고 증명서를 위·변조하고 이를 사용했다. 재학생 충원율을 높이기 위해 유령 학생을 모집한 뒤 허위 학사관리 자료로 국가장학금을 빼돌렸다. 전임 총장 등이 이에 공모했다. 교육부 전 대변인도 이사장 측에서 뇌물과 향응을 받아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전 이사장은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교비 횡령 이후 학교는 급속도로 무너졌다. 이용민 팀장은 “횡령 때문에 학교에 남은 운영비도 없고, 2016년부터 제대로 안 돌아간 거죠. 들어오는 학생이 없고요”라고 말했다. 2015~2017년 학교 운영실적으로 평가하는 2018년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맞았다. 최하위 등급을 맞으면 재정지원제한대학 유형Ⅱ로 묶여 학생들은 3년간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없다. 학자금 대출도 100% 제한되고 학생 정원 30%를 감축해야 한다.
마냥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지역 내 다른 대학과 통폐합을 시도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요구한 횡령액 146억원 보전 조건을 충족하기 어려워 무산됐다. 그러는 사이 신입생은 2017년 548명, 2018년 387명, 2019년 86명으로 급락했다. 올해는 신입생 11명이 등록을 신청했지만 학교 측이 등록을 받지 않았다.
“학생들한테 미안해서요”
앞서 폐교된 대학이 겪은 임금 삭감·체불이 서해대에서도 일어났다. 학교 구조조정 명목으로 2016년 말 임금 삭감이 이뤄졌다. 2017년 말부터는 임금 체불이 시작됐다. 교직원 서씨는 “처음에는 ‘왜 이러지?’ 이 정도였어요. ‘곧 좋아지겠지’ 했는데 애들이 안 들어오고 수익원도 없다 보니까 ‘도저히 점점 힘들어지는구나’ 했죠”라고 말했다.
임금 미지급 기간이 길어지면서 직원들이 학교를 떠나기 시작했다. 남은 사람들은 주말에 바빠졌다. 생활비에 한 푼이라도 보태기 위해 공사장 일, 시험감독 아르바이트, 지인 사업장 아르바이트를 했다.
교육 환경도 악화했다. 학교에서 만난 방사선과 3학년 김모(26)씨는 “원래 기숙사생이었거든요. 지금은 없어져서 전주 친척 집에서 왔다 갔다 해요”라고 말했다. 이용민 팀장은 “(기숙사) 운영 안 한 지 2년이 넘었어요. 200명은 돼야 운영을 하는데 학생이 적어서 매년 적자가 생기니까요”라고 말했다. 군 휴학 전 운행하던 스쿨버스가 없어져 김씨는 시외버스를 타고 학교에 왔다. 방사선과 3학년 학생들은 12월 예정된 방사선사 국가고시를 앞두고 방학에도 특강을 들으러 통학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뒤숭숭한 분위기에 혼란스럽다. 방사선과 김모(25)씨가 “나는 폐교 된다고 알고 있는데”라고 하자 옆에 있던 이모(24)씨는 “아냐 그거. 확정인 것 같은 느낌이긴 한데 아직 100% 확실하진 않으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자를 향해 “야간학교로 바꾼다, 다른 학교랑 합친다 루머는 많아요. 교수님들은 ‘올해 안에 폐교될 일 없으니까 너희까진 무조건 졸업시킨다’고 하셨어요”라고 덧붙였다.
직원들은 학생들에게 미안할 뿐이라고 했다. 고씨는 “강의실 한 번 가보세요. 실험 실습을 해야 하는데 도구를 사줄 수가 없어요. 내가 봐도 너무 미안해요”라고 말했다. 정씨는 “애들이 정말 불쌍해요. 등록금은 냈는데 이게 뭐지 싶을 거예요. 전 제 딸이 이런 상황이면 학교에 쫓아갔을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서해대는 지난 3월 교육부에 자진폐교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오랜 시간 지쳐있었고 학생들에게 미안함이 쌓였을 때였다. 정씨는 그 시기를 이렇게 기억했다. “우연치않게 직원들끼리 차를 마셨는데 올해 상황이 너무 심해진 거예요. 작년 재학생이 500명이었는데 올해 딱 200명이 됐어요. 누군가 ‘200명이면 어떻게 해’라며 이야기를 꺼냈고 서로 속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죠. 이럴 거면 애들을 위해서라도 문 닫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했는데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온 거니까요.” 교수들이 뒤를 이었다. 교수협의회가 폐교에 찬성하기로 의결했다. 교직원 전원은 지난 3월 23일 전체회의를 열고 자진폐교를 요청했다.
폐교 신청을 했다고 바로 학교가 문을 닫지는 않는다. 교육부는 지난 6월 현장실사를 나와 교직원과 학생의 의견을 수렴했다. 서해대는 처분을 기다리며 2학기 개강을 준비하고 있었다. 보통 개강을 앞둔 대학가 인근은 학생들로 분주해지지만 8월 27일 방문한 서해대에는 생동감이 없었다. 교직원들은 “개강해도 별다를 거 없다”고 했다.
학생이 줄었지만 교직원 업무의 가짓수는 줄어들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필수 업무들이 있다. 민원 업무부터 교육부에서 내려오는 지시사항, 재학생 및 졸업생의 증명서 발급, 도서관 업무 등이다. 직원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남은 이들의 부담이 커졌다. 3년 전 이곳엔 직원 25명이 있었는데 지금은 9명이 남았다. 업무가 1인당 3~4개씩 늘었다.
남은 이들은 지금이라도 떠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 동료들에게 미안해서다. 고씨는 “지금이라도 나가고 싶은데 이제는 나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저 한 명이 나가요? 지금도 너무 힘든데 저 빠지면 누가 그걸 책임질 거예요. 지금 직원 한 분은 임신하셨는데 미안해서 나가질 못하세요.” 고씨도 몸이 좋지 않아 최근 2주간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병원 침대에서 ‘미안하다’는 생각만 했다고 한다. 그는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게 맞지만 의리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서씨는 교육부가 학교 신입생 모집을 중단시켜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학생을 더 받으면 악순환이 계속돼요. 학생 모집을 교육부에서 중단하는 것과 자체적으로 하는 건 다르니까요”라고 말했다.
서해대 한 교수는 “직장을 잃어버리는 건데 다들 착잡하죠.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건데”라고 말했다.
학교 앞 상권 “모아둔 돈도 떨어졌는데…”
서해대 인근 상권이 슬럼화된 지는 이미 오래다. 학교 앞에서 복삿집 ‘동서문화사’를 운영하는 현모(63·여)씨는 “보다시피 놀고 있어요. 코로나까지 겹치니까 어쩔 수 없지. 지나가는 사람 혹시 들어올까 문 열어두는 거죠”라고 말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만 14년, 근방에서는 20년 이상 복삿집을 했다고 한다. “예전엔 괜찮았죠. 학생들이 2000~3000명쯤 될 때는 동네가 시끌벅적했는데 지금은 택시 잡기도 힘들어.” 요즘은 간간이 들어오는 교회 주보나 공사장 견적서 제작이 주된 수입원이다. “월 100만원도 안될 때가 있어요. 종잇값하고 뭐하고 나면 남는 게 없지. 그동안 모아놓은 돈 있으니까 그걸로 써 먹었는디 그것도 인제 거의 떨어져 나가고…”
군산 구시가지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61)씨는 “서해대 앞 상권이 다 죽었다”며 “예전엔 술집들도 많았고, 짜장면집이고 김밥집이고 다 없어지더만 애들이 없어지니까”라고 말했다. 택시기사 조영근(53)씨는 “군산에 있는 대학들이 다 재정적으로 안 좋아요. 자꾸 (학생들이) 빠져나가잖아요”라며 “군산은 공단 때문에 더 난리예요. GM하고 현대조선소하고 OCI도 안 좋다 그러고. 뭐 잘된다는 걸 못 봤어요”라고 말했다.
서해대는 시작일 뿐 앞으로 군산의 다른 대학도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용민 팀장은 “학생들이 없어요. 고등학생 자체가 인구가 줄어서 몇십만명이 빠져나간다는데. 공부 좀 잘하면 서울 갈 거고”라고 말했다. 호남지방통계청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인구로 보는 호남권(광주·전북·전남·제주) 미래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전북의 학령인구(6~21세)는 2019년 94만7000명에서 2047년 56만4000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역 대학들 사이에선 만학도를 유치하려는 경쟁도 심화하고 있다. 이 팀장은 “군산대도 사람을 끌어당겨야 하니까 만학도로 눈을 돌리는 거예요. 만학도들은 서해대 2년 다닐 돈으로 군산대 4년 다닐 수 있으니까 거기로 가는 거죠”라고 말했다.
박재승 총장 대행(임상병리과 교수)은 지방대 폐교에 관해 정부의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중학 이사장의 잘못과 그동안의 문제점들 때문에 남아있는 교직원, 학생들이 피해자가 됐어요. 정부는 이 사람들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해요. 이게 단순히 우리 대학만의 문제라면 상관없겠지만 (폐교 학교들이 늘어나면) 다른 대학의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정해진 미래, 대학 폐교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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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권중혁 기자, 권기석 김유나 방극렬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