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배신감”…차별화냐, 독자노선이냐. 이재명 발언 주목

입력 2020-09-06 17:31

이재명 경기지사가 2차 긴급재난지원금 선별 지급 결정을 두고 “원망” “배신감” 등의 강도높은 발언을 쏟아내며 우려했다. 당의 결정을 받아들이긴 하겠지만 후폭풍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경고성 발언을 잇달아 내놓은 것이다. 이 지사가 정부 정책을 두고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하면서 민주당의 전통적 진보 지지층을 겨냥해 독자 노선을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6일 정부·여당의 재난지원금 선별 지급 방침과 관련해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이 불길처럼 퍼져가는 것이 뚜렷이 보인다”며 작심 비판했다. 대통령 실명까지 거론하며 비판 수위를 높인 것은 이례적이다.

이 지사는 선별 지급 방침을 수용하겠다면서도 “강제당한 차별이 가져올 후폭풍이 너무 두렵다”며 선별 지급에 궁극적으로는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재차 확인했다. 또 ‘불환빈 환불균’을 언급하며 “2400년 전 중국의 맹자도 250년 전 조선왕조시대 다산도 ‘백성은 가난보다도 불공정에 분노하니 정치에선 가난보다 불공정을 걱정하라’고 가르쳤다”고 덧붙였다.

이 지사는 당정청이 선별 지급을 공식화한 직후 페이스북에 ‘오로지 충심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또다시 게시했다. 이 지사는 “저 역시 정부의 일원이자 당원으로서 정부, 여당의 최종 결정에 성실히 따를 것”이라며 “이는 변함없는 저의 충정이다. 왜곡하지 말아 달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도 이 지사는 “선별 지급의 결과는 정책 결정자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위험할 수 있다”며 거듭 우려를 나타냈다.

이 지사는 재난지원금 논의 국면에서 연일 강경한 메시지를 쏟아내며 존재감을 부각하고 있다. 진보 색채를 강화한 정책적 선명성을 앞세워 차기 대권주자로서 차별화를 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지사가 극렬 친문 지지층을 제외한 친문 지지층 중 진보 성향이 강한 지지층 공략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10%대에 머물러 있던 이 지사의 지지율이 20%대로 올라서면서 이 대표를 바짝 추격하게 된 배경에 ‘진보 친문’의 지지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한 중진 의원은 “자기에게 올 수 없는 극문 지지층은 포기하고 진보적 친문 지지층을 견인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 지사가 담론 경쟁을 시작한 것인데, 담론 경쟁의 1순위 목표는 이 대표와의 차별화”라며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진보적 색채를 가지고 있어서 지지했던 사람들은 이 지사의 진보적 접근 방식을 우호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불법고리사채 이슈도 꺼내들었다. 이 지사는 지난달 대부업체 법정 최고 금리를 10%로 제한하는 입법 협조를 건의하는 편지를 민주당 의원들에게 보낸 바 있다. 또다른 정책 이슈를 선제적으로 주도해나가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 지사는 “현재 대한민국 가계부채가 심각하다”며 “최고이자 10% 제한과 더불어 불법고리사채 무효화법 제정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최근 여권 내부에서 격렬하게 벌어진 재난지원금 논쟁은 당정청이 선별 지급을 공식화하면서 당분간은 잠잠해질 전망이다. 코로나 재확산세 속 이 대표는 선별 지급을, 이 지사는 전 국민 지급을 주장하면서 유력 차기 대권주자 간 선명한 대립구도가 형성됐다. 이 지사는 홍남기 경제부총리와도 부딪치며 당정과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친문재인계로 분류되는 신동근 최고위원과도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