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블랙리스트 작성 MBC 카메라기자 “해고 무효”

입력 2020-09-06 15:07

‘아나운서 성향분석’ ‘방출 대상자 명단’ 등 동료 기자들에 대한 소위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전임 경영진에게 넘겼다는 이유로 해고됐던 MBC 카메라 기자가 해고무효 확인소송에서 승소했다.

서울고법 민사1부(부장판사 윤승은)는 MBC 카메라 기자인 A씨가 MBC를 상대로 제기한 해고무효 확인소송의 항소심에서 “A씨에 대한 해고는 무효”라며 “못 받은 임금 8000만원과 더불어 복직시킬 때까지 월 8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승소 판결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2017년 8월 기자회견을 열고 ‘카메라기자 성향분석표’ ‘요주의 인물 성향’ 등 회사가 기자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인사에 반영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MBC는 2018년 1월부터 블랙리스트 및 부당 노동행위 관련 감사를 진행했고, 같은 해 4월 전임 경영진이 카메라 기자와 아나운서의 성향을 분석하고 방출 대상자 명단을 마련해 인사 불이익을 줬다고 발표했다.

이후 MBC는 블랙리스트 문건을 만든 당사자로 지목된 A씨 등을 부당노동행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고, 인사위원회를 거쳐 A씨를 징계해고 했다. 해고 사유는 복무 질서를 어지럽힌 점, 블랙리스트 문건에 기초해 작성한 인사 이동안을 인사권자에게 보고한 점, 문건을 다른 사람과 공유해 명예훼손·모욕죄를 저지른 점 등이었다.

A씨는 이에 반발해 MBC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은 MBC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A씨의 해고 사유 3가지 중 인사권자에게 보고한 점은 징계 사유로 삼을 수 없다면서도 “나머지 인정된 두 가지 징계 사유만으로도 A씨에게는 사회 통념상 고용 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의 책임 있는 사유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문건을 작성해 복무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징계 사유만으로는 고용 관계를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비위 행위의 정도가 무겁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해고 처분은 징계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 무효”라고 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