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대학 폐교는 ‘정해진 미래’입니다. 저출산으로 학령인구가 줄고 있어 사라지는 대학은 앞으로 더 많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경쟁력이 부족한 대학은 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부실한 대학도 누군가에는 생계가 달린 일터입니다. 연쇄적인 대학 폐교는 사회적 문제가 될 것입니다. 국민일보 취재팀은 대학이 폐교되는 현장을 살펴보고 5회 기획기사를 준비했습니다. 첫 회에서는 8월 31일 문을 닫은 동부산대학교의 마지막 한 달 이야기를 두 차례로 나눠 전합니다.
지난 7월 28일 동부산대 허모(49) 사무처 구매팀장은 부산에서 세종시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있었다. 이 대학 직원노조 지부장인 그가 운전한 카니발 차량에는 같은 학교 교수 3명과 직원 2명이 함께 탔다. 그들의 목적지는 정부세종청사. 폐교 전 동부산대 구성원의 의견을 듣는 마지막 ‘청문’이 교육부에서 열린 날이었다. 차 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허 팀장은 “마지막 희망을 갖고 올라가던 길이었는데…”라며 그날을 떠올렸다.
폐교 D-34, 교육부는 말이 없었다
같은 날 교육부 청문회장. 폐교에 반대하는 A교수가 ‘동부산대학교 폐쇄명령에 대한 구성원 의견’을 낭독했다. A4 용지 다섯 쪽 분량이었다. “(학교를 인수하겠다는) 재정기여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얼마든지 정상화 기회가 있습니다. 폐쇄 명령이 성급하게 8월 31일 자로 내려진다면 학생들의 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들이 이번 학기까지 마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교육부 직원 2명은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했다고 한다. A교수는 청문 직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고 혼신의 힘을 다해 버텨보려고 한다”고 말했다.청문에 참석한 동부산대 관계자들은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폐교를 받아들이기로 한 대학본부 측 인사들도 같은 자리에 있었다. 대학본부 측은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정리되는 편이 낫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했다. 폐교를 막으려는 사람들과 폐교를 기다리는 사람들, 양측은 오랜 기간 갈등을 겪었다. 감정싸움으로 시작된 일이 소송으로 번졌다. 청문회장에서 이들은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인사를 하지 않았다.
동부산대는 41년 역사를 지닌 2·3년제 사립 전문대다. 1979년 개교 당시에는 동래여자전문대학이었다. 96년 남녀공학이 되면서 동부산대로 이름을 바꿨다. 지역에서 입지가 탄탄한 편이었다. 2015년 전임 총장과 재단 임원 등이 약 184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파면되면서 내홍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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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김유나 기자, 권기석 권중혁 방극렬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