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군 군월드 대표
특별한 정치 성향을 접더라도 “불판을 갈자”며 호쾌한 비유를 퍼뜨린 故노회찬 의원은 초당적으로 회자되는 인물이다.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수 년 간 땀 흘려 일하면서 이 나라 산업을 이만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공로가 있는 중소기업 노동자이므로 감형을 한다’, 이런 예를 보신 적 있습니까?”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같은 그의 일성이 아른하다. 다름 아닌 IMF 이후 ‘경제재건’과 ‘공익’의 캐치프레이즈로 온갖 범죄 및 도덕적 해이를 벌였음에도 사면 받고 복귀 한 뒤 거리낄게 없듯 승승장구 하는 일부 대기업 및 공기업의 촌극을 꼬집는 일침 아니었을까.
명분은 허울인듯해도 포장을 위한 필요충분이요, 실리는 속물인듯해도 잇속 메우기를 위한 필요악이다. 그도 그럴 것이 ‘토지의 강제수용’이라함은 공익적 명분과 강제적 실리를 하나로 품는다니, 딱 ‘한 끗 차이’라고 보는 게 온당하다. 보상과 보전이라는 정당성 부재 시 외려 누군가의 ‘불행’으로 다른 누군가의 ‘다행’을 일구는 ‘속 빈 강정’으로 타락하기 십상이란 것이다.
전체로 단언할 순 없지만 실제 토지강제수용 지역 대부분은 짧게는 십 수 년, 길게는 수 십 년 가까이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로 묶여진 상황이다. 도시 연담화 등을 억제하고자 지난 1971년부터 시행된 그린벨트는 사실 개발제한보다 개발금지라는 의미에 더 맞닿아 있다. 그렇다보니 재산권 행사는 애초 논의 대상이 아닐뿐더러, 거래허가제도나 그린벨트 규정으로 말미암아 여타 지역보다 현저히 낮은 공시지가가 형성되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결론적으로 관련 보상을 받는다 해도 오랜 기간 축척해 온 재산상 피해가 불가피해짐은 물론, 보상금을 통해 인근 유사한 토지나 주택매입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란 것이다. 다시 말해 정당성 확보란 잣대부터 ‘없이’ 출발한 셈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사업 주체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만을 위한 거버넌스에 있다. 어느 지역에선 지역본부장발 공언이었던 ‘조성원가 공급’의 약속이 뒤집히고, 또 어느 지역에선 결제라인이 공고한 공문이 공교롭게도 지장물 조사가 이뤄진 뒤 ‘실수’로 둔갑했다더라. 어느 중소기업의 사업 부지를 편입한 후 거기서 나온 ‘온천공’에 관한 검사를 막아서고, 공공사업으로 인해 백척간두에 몰린 사업장에게 기업회생자금의 명목으로 자금을 지원한댔다가 후엔 선보상에 이자까지 챙겨가는 돈놀음을 벌였다니 우리는 아프다. 성토하는 민원인에게 물병을 집어던지고, 비통한 심정으로 애원하는 원주민을 향해 “세입자 데리고 놀려니 힘들다”고 했단다. 비판 기사 한 줄에 눈 감고 귀 막아버리고, 신도시 개발계획마저 유출한 LH에게 법적, 도덕적 해이란 정말 없는 걸까. 저 사례에 등장한 주인공 대다수가 ‘1년 마다’ 자리를 옮겨 진급한다는데 그래서 우리는 아프다.
LH는 혹여 쌀 한가마니에 4000원 하던 그때를 그리워하는 게 아닐까.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당 236원의 푼돈으로 국가에 토지를 바친 이들의 시대도 다르고 세대도 달랐던 공명심을 LH는 아직 잊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LH는 그때의 살신성인을 발휘한 청년들이 50년 뒤 노년이 된 오늘에 이르러 또 헐값에 터전을 편입하려는 LH를 향한 ‘황혼의 투쟁’을 벌인단 사실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그때의 황홀경에 빠져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타성으로 애써 모른 척 하려는 걸까. ‘주거안정을 위한 복지정책 실행’ 이라는 명분 뒤 숨은 자산의 출처를 LH 스스로 반추해야 할 때다. LH는 지금이라도 선량한 원주민과 적법한 절차로 정당한 사업권을 취득한 사업장을 향해 보상을 갈구하는 ‘꽃뱀’, 내지 ‘알 박기’란 호도를 거둬들여야 한다. LH를 향한 잇속 챙기기, 성과급 나누기, 진급 바라기라는 합리적 중론에 자신있게 어불성설이라 반격할 수 있는지부터 자성해 보라는 의미다.
LH의 특별해마지않은 막무가내 식 추동(推動)에 소외된 이들의 희망찬 봄과 따듯한 여름은 이제 없다. 대신 스산한 추동(秋冬)만이 ‘행복공공주택’의 발 밑, ‘우리도 행복’하고자했던 이들의 폐부 마디마디를 매섭게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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