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고생하는 간호사들을 응원하기 위해 올린 글에 댓글이 3만개 넘게 달렸다. 문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올린 다른 글에 달린 댓글 개수가 1000~5000개 정도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유례 없는 반응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 글에서 간호사의 노고를 강조하면서 “지난 폭염 시기, 옥외 선별진료소에서 방호복을 벗지 못하는 의료진들이 쓰러지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국민의 마음을 울렸다”며 “의료진이라고 표현되었지만, 대부분이 간호사들이었다는 사실을 국민은 잘 알고 있다”고 적었다.
이 문구에 의료계 파업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간호사와 의사 편을 갈라서 여론 분열을 유도한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논란은 정치권까지 옮겨 갔다. 느닷없이 정치의 한복판에 끌려들어간 간호사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국민일보는 3일 전·현직 간호사들에게 문 대통령 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 문 대통령 글이 힘이 되었나
김모 간호사(비뇨기과·성형외과 병동, 2년 차) “만약 의료계 파업 상황이 아니었다면 힘이 됐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글이 의료계 파업 중단을 어렵게 할 거라는 생각을 하니 힘이 안 났다. 꼭 이 시국에 글을 올려야만 했는지, 간호사와 의사를 구분했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다른 간호사들 반응도 안 좋았다. 오늘 아침 티타임을 가졌는데, ‘간호사를 정치에 이용하는 것 같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의료계 파업을 하고 있는데 이런 글을 올리는 건 아니라는 의견이 많았고, 나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박모 간호사(응급병동, 2년 차) “글을 보자마자 화났다. 의사 파업 상황에서 간호사만 응원하는 건 어떤 형식이든 ‘대통령의 자기편 만들기’란 생각밖에 안 들었다. 의료계가 파업한 상황에서 제삼자까지 끌어들여서 뭐 하는 짓인가. 또 인스타그램을 보니까 의사 직종이랑 관련된 친구들이 대통령이 응원해줬다는 이유만으로 간호사를 안 좋게 보더라. 간호사 입장에서는 여기저기서 치이는 거다. 힘은커녕 상처만 받았다.”
신모 간호사(외과병동, 2년 차) “화가 난 건 아니지만 힘은 안 됐다. 너무 말만 번지르르하고, 실제로 보여준 게 없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특히 의사 파업에 안 좋은 감정이 있던 간호사들을 부추길 수 있을 것 같다. 예컨대, 환자가 많은 내과 병동에서는 간호사들이 의사에게 화가 났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병동은 의사 파업으로 간호사 업무가 많아졌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간호사만 응원하는 글을 올린 건 적절하지 않았다.”
장모 간호사(외과병동, 1년 차) “문재인 대통령이 간호사들에게 순수하게 감사를 전하려고 글을 올리지 않은 것 같다. 의료계 파업 상황을 생각하면 이 글은 의사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글을 올린 것 같다. 그리고 간호사들에게 힘을 주고 싶다면 의사 파업을 빨리 해결해야 한다. 이 글은 파업에 대한 해결안도 아니었다.”
이모 간호사(25년 차) “대통령이 특정 직종에 대해 언급해주시고, ‘너희가 정말 고생하고 있구나’라고 말해준 건 25년 만에 처음이었다. 25년 간호사 생활 중에 ‘이만한 게 없다’ 싶었다. 간호사가 부끄러운 적도 많았는데, 정말 감사하고, 인정받고, 보상받은 느낌이었다. ‘편 가르기’ 비판은 편을 가르고 싶은 사람들의 시선 아닐까. 문 대통령이 ‘간호사들한테 수고했다’는 이야기를 한 거지, ‘간호사들 너네만 수고했다’고 말한 게 아니다. 칭찬은 그냥 칭찬으로 들어주면 안 되나.”
- 의사 파업으로 인해 업무가 늘어난 건 사실인가
김 “환자가 아프면 의사에게 처방을 받아야 하는데 의사가 없으니 약을 못 준다. 환자가 적절한 시간에 약을 처방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러면 환자는 간호사들에게 불만을 표출한다. 연락은 연락대로 안 되고, 환자는 환자대로 아프다고 하니 중간에서 새우 등만 터진다. 그뿐만 아니라 인턴들과 레지던트들이 맡은 업무도 간호사들에게 넘어오고 있다.”
박 “인턴들이 없어서 피검사나 남성 환자들 소변줄 꽂기 같은 일이 간호사한테 넘어오고 있다. 얼마 전엔 수쌤(수간호사)이 연차 높은 남자 간호사에게 ‘소변줄 꼽는 걸 파견 가면 어떻겠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환자 관리도 잘 안 된다. 간호사가 의사 지시를 받아 처방전을 작성하는 악습도 과거보다 더 심해졌다. 의사들이 파업 이후 간호사들 노고가 많아진 건 사실이다.”
신 “병동별로 다르게 봐야 한다. 외과는 의사 파업으로 인해 수술이 다 취소가 되고 있다. 외과 병동 간호사들은 수술이 없으니까 다들 쉬고 있다. 의사 파업으로 인해 오히려 업무가 줄어든 셈이다. 다만 내과 병동 간호사들은 의사들이 해야 할 일을 간호사가 떠맡아서 업무가 많아져서 힘들다고 하더라.”
이 “간호사는 언제나 바빴다. 지금은 전 국민이 간호사가 바쁘게 일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는 느낌이다. 의사 수가 부족해지면 간호행위를 시행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지금은 임상에 있지 않아서 정확하게 말하긴 어렵다”
- 글 끝에 적힌 ‘간호사 수 충원, 근무환경과 처우개선’은 어떻게 생각하나
김 “간호사들은 예전부터 힘들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지킨 건 간호사 수 충원밖에 없다. 면허가 있는데 간호사를 안 하는 이유는 근무환경 때문이다. 근무환경과 처우개선을 진심으로 할 생각이 있는지 의심이 들었다. 또 ‘말만 하는 건가’ 싶었다”
박 “처우개선은 의사 파업 전에도 당연한 일이었다.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환경이 진짜 문제다. 아직 밥도 제때 못 먹고, 추가근무했을 때 추가임금을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조금만 더 힘을 내달라’는 문구에 제일 화가 났는데, 제대로 지원부터 해주고 그런 말을 했으면 좋겠다”
신 “그런 얘기는 좀 어이가 없었다. 코로나 전부터 인력과 처우 문제가 많이 제기됐고, 코로나19와 의사 파업을 겪으면서 심각성이 정점을 찍었다. 한 번이라도 개선 의지를 제대로 보여준 적이 있었나. 하다못해 이런 글을 쓸 시간에 가수 아이유처럼 얼음조끼라도 지원해줬다면 좀 낫지 않았겠나. 다만 이 내용까지 편 가르기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
장 “간호대 정원 증원 같은 정책만 밀어붙이던 상황에서 갑자기 올라온 글을 마냥 고맙게 느낄 간호사들이 있을까 싶다. 가중된 업무가 의사들의 파업 때문에 생긴 것도 아니다.”
- 문 대통령 글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김 “문 대통령은 정말로 간호사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글을 올렸을 수 있다. 하지만 근무환경 개선이 이루어졌다면, 문 대통령 글에 이렇게 분노하지 않았을 거다. 환경 개선에는 관심도 없다가 의료계 파업 국면에서 뜬금없이 간호사를 칭찬하니까 비판이 나오는 거다. 시기적으로 좋지 않았다.”
장 “이 글은 의사 파업을 더욱 자극할 수 있었다. 편 가르기로 누구 탓을 하거나 응원하기보다는 업무가 빨리 안정될 수 있도록 정부가 파업 해결에 힘을 써줬으면 좋겠다.”
이 “대통령이 쓴 글을 보면서 ‘지금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은 동산병원 간호사가 아니라 내 친구, 아이 엄마일 텐데 시선이 너무 간호사한테 와있는 거 아닌가’란 생각은 들었다. 최근 코로나19가 다시 심해지고 있다. 간호사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힘들 텐데, 간호사 말고도 위로받을 사람이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은 들었다. 대통령이라면 간호사 이외에 힘들고 고통받을 국민에 대한 시선도 담아내야 하지 않았을까.”
박준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