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을 앓고 있는 9살 아들 김선우(가명)군의 어머니는 요즘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일이 많아졌다. 1년 전 발병한 아들이 병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최근 의료계 파업 여파로 추가 항암치료를 받지 못한 채 위태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김군은 3년 정도의 일정으로 치료를 진행 중인데 최근 들어 2주째 병실 배정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김군 어머니는 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병원에서 전공의 파업으로 인력이 부족해져 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응급실에서라도 좋으니 항암 주사를 놓아 달라고 병원에 간청했다”며 울먹였다. 이어 “그랬더니 병원 분이 ‘그렇게 답답하시면 어머니도 정부에 의사들과 같이 한마디 해달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김군 어머니는 아이 생명이 걸린 문제 앞에서도 인력이 없다는 말만 반복하는 병원 측의 태도가 너무나 야속하다. 그는 “정부나 의사나 환자들이 보기에는 다 원망스럽다”며 “암 환자조차 방치되고 있는 현실을 이성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김군 어머니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계속 떨어지는 아이의 면역력 수치다. 면역력 저하는 다른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2주 전만 하더라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파업하지 않는다고 하더니 결국 파업에 들어갔다”며 “다음 주까지도 파업이 계속될까봐 불안감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전공의·전임의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암 환자들의 공포와 절망의 시간도 길어지고 있다. 항암을 제때 받지 못해 재발 우려 속에 지내는가하면, 시기를 늦추기 어려운 조혈모세포 이식(골수 이식) 수술 일정도 미뤄지고 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입장에선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한 채 대립하고 있는 정부와 의사 모두 원망스러운 대상일 뿐이다.
지난해 말 림프종 진단을 받은 30대 여성 강선희(가명)씨는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받기 직전 전공의·전임의 파업이 시작됐다. 강씨는 지난 9개월의 힘겨운 항암 치료를 견뎌내고 이제 마지막 관문인 이식 수술을 앞두고 조혈모 채집까지 무사히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조혈모 채집 마지막 날 병원 측은 강씨에게 “파업으로 당장 이식을 할 수 없게 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병원 측은 이어 “이식이 늦어지면 그 사이에 암세포가 활성화돼 재발할 수도 있다”며 “불가피하게 항암을 한 차례 더 진행해야 할 것 같다”고도 했다.
강씨는 이번 주말 또다시 예정에 없던 항암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는 모진 고통을 동반하는 항암 치료를 한번 더 견뎌낼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집에 있는 어린 자식과 남편이 나 때문에 더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진다”며 “정부든 의사든 그 누구도 환자편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 한탄스럽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