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펜 독서] ‘흔적’ (1): “죽은 고아를 안고 종일 울었다”

입력 2020-09-03 09:40
註 : ‘흔적’은 독일로 건너간 파독 1세대로 디아스포라의 삶을 이어온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얘기다. 독일에서 사는 저널리스트이자 파독 간호사들로 이뤄진 연극단체 ‘빨간 구두’ 연출자 박경란의 저서이다. 박경란의 또 다른 저서는 ‘나는 파독 간호사입니다’ ‘베를린 오마주’ 등이 있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 6:17)

독일에 살면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을 더러 만났다. …크고 작은 흔적이 우물처럼 패여 있다. …나는 재독 한인사회의 근간을 이룬 곳이 교회라 믿는다. 한인 지역사회의 중심이 된 교회에는 기독교인들의 삶과 간증이 살아 있었다. 이 땅의 곤고했던 그들에게 하나님은 다가가셨다. 한 영혼마다 찾아가 독일 땅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게 하셨다.

독일의 초창기 한인공동체는 파독 1세대들이 모인 교회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태동했다. 고국에서 이미 십자가의 복음을 알았던 이들은 믿지 않은 동료들의 손을 이끌었다. 기도 모임을 만들었고 그것이 교회가 되었다.

…불꽃처럼 치열하게 살다간 그들의 역사를, 부족하고 초라한 나의 질그릇에 담는 것이 버거웠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직접 만나셨고, 난 단지 그의 심부름꾼으로 받아 적기 시작했다. (저자 서문)

▷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박명희 집사

당시 (6·25) 전쟁고아가 많았다. 헐벗은 이들이 지천이었다. 전남 목포의 영아원에서 일손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다. 집에서는 과년한 큰딸의 목포행을 반대했다.

영아원에서 일하는 동안 3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 낭만적인 목포 바닷가를 한가하게 거닐어 본 적도 없다. 주어진 신명이기에 피곤함도 몰랐다. …

“새벽에 아이들이 아프면 뒤로 둘러업고 앞으로 안고 병원으로 내달렸어요. 뒤에 업은 아이가 병원에 도착할 때쯤엔 이미 죽어 있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러면 슬픔 때문에 종일 그 아이를 안고 울었어요. 그때 영아원을 운영하시는 장로님이 ‘그 아이는 박 선생님의 사랑을 받고 떠났잖아요’하고 위로해 주셨지요.”

…1년 후 박 집사는 아버지의 뇌졸중 소식을 듣고 급히 상경했다. 그리곤 다시 목포로 내려가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대한석탄공사 화순영업소의 보건행정 간부로, 청주 희망원과 서울 충현 영아원에서도 일했다. …교사들이 묵는 기숙사를 마다하고 고아들과 가장 가까운 후미진 다락방에서 생활했다. (5~17쪽 ·피플엔북스 刊) <계속>

◎독서 노트: 박명희(83)는 황해도 해주 태생으로 고급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황해도 연백으로 이주했고, 또 개성으로 옮겨 초등학교에 다녔다. 1956년 이화여대 간호학과에 다니며 계몽운동에 나섰으며 이때 종교적 소명 의식도 자랐다. 춘천간호학교(현 한림성심대)에서 후학을 가르치다 1975년 파독 간호사로 나갔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