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 주도로 세계 170개국이 함께 하는 코로나19 백신 개발 프로젝트에 미국은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같은 태도가 전세계가 공평하게 백신을 나누는 프로젝트의 목적 자체를 흔들고 있으며, 결국 미국에도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행정부가 코로나19 백신 개발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2일 보도했다.
코백스는 WHO와 감염병혁신연합(CEPI),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이 공동으로 코로나19 백신 개발 및 제조, 배포하는 프로젝트다. 특정 국가의 백신 독점을 막고 모든 나라가 공평하게 백신을 확보해 고위험군 환자에게 우선 투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모두가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나은 결과를 얻는 것이 목적이다. 유럽연합(EU)과 독일, 일본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한국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주드 디어 백악관 대변인은 WP에 “미국은 이 바이러스를 물리치기 위해 세계 파트너들과 노력을 계속하겠지만 부패한 세계보건기구와 중국의 영향을 받는 다자 기구에 의해 제약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WP는 “알렉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과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이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였으나 일부 반대 의견이 있었다”면서 “미국이 여기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최근 미국과 사이가 틀어진 WHO가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독자적인 행보가 백신 대량 선점 등으로 코백스 프로젝트 자체를 위기에 빠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불참 선언은 다른 국가들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제네바 국제개발연구대학원의 수에리 문 글로벌 보건센터장은 “이 백신에 관한 국가의 행동은 공중보건을 넘어 정치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 정부가 자국 시민의 건강이 걸린 문제를 놓고 정치적 도박을 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백신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기회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미국이 지금 개발 중인 백신 가운데 공급 가능한 백신이 하나도 없게 된다면 미국엔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된다.
로런스 고스틴 조지타운대 교수는 “백신을 혼자서 개발하겠다는 미국의 전략은 엄청난 도박”이라고 비난했다. 켄들 호이트 다트머스 가이젤의과대 교수는 “코백스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는 건 보험에서 탈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미국은 제약회사와 거래하는 동시에 코백스에 참여할 수도 있다. 단순히 위험 관리 관점에서 볼 때도 이 결정은 근시안적”이라고 말했다.
WP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해 “다른 나라가 코로나19로 봉쇄 상태에 놓인다면 미국 경제 역시 회복되기 힘들다”고도 지적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