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경영평가단, 임명부터 ‘불투명’…공정·객관 평가 어려워

입력 2020-09-02 17:51
올해 진행됐던 2019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의 공정성에 의혹이 제기된 것은 이 과정에 참여한 평가위원이 평가단 간부의 재량권 남용, 기획재정부의 과도한 개입 등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들은 오랜기간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다고 복수의 평가위원들은 주장한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더욱 확실하게 담보하기 위해서는 경영평가 결과를 심의·의결하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의 독립 등 대대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되는 것은 평가위원 선임 문제다. 100명 안팎의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평가위원들은 120여개 공공기관의 성과급과 기관장 해임 건의 등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하지만 그 선임 과정부터 투명하지 않다. 표면적으로 기재부는 매년 말 공고를 통해 평가위원 선발절차를 진행한다. 하지만 평가단 출신 인사들은 정부 고위인사들의 추천 여부가 선발에 상당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과거 경영평가단에 간부로 참여했던 교수 D씨는 2일 국민일보에 “국회의원, 정부 유력인사들의 추천을 받은 사람들 중심으로 평가위원들이 뽑힌다는 얘기는 알려진 얘기”라며 “추천받은 사람들만 해도 평가위원 정원의 몇 배가 된다”고 말했다. 몇년 전 평가위원을 했던 교수 E씨는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저마다 평가위원을 추천할 것이고 경쟁이 치열하니 결국 누구 ‘빽’이 더 세냐, 그 결과로 뽑히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정부 안팎의 추천이 경영평가위원에 선발되는 데 일부 영향을 미치다보니 애초부터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평가위원들은 자신을 추천한 기관 또는 인사들의 의견에 기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씨는 “뽑힌 위원들이 자신을 추천해준 사람, 내년에 (추천을) 부탁해야 할 사람들 말을 들어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특정 부처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D씨는 “평가위원을 하는 동안에는 영향력 강화, 공공기관과의 인맥 등 유무형의 보상이 어마어마하다”며 “평가위원을 계속 하기 위해서는 순응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기재부가 평가단을 통해 사실상 경영평가를 주도하는 것에 대해 정부의 정책 방향을 공공기관들에게 강제하는 도구로 이를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일례로 이명박정부는 자원외교, 박근혜정부 때는 성과연봉제와 부채비율 감소, 문재인정부는 사회적 가치 구현을 각각 강조하며 공공기관의 경영평가 지표를 전면 수정했다. 정부 별로 지표가 제각각이다보니 공공기관들의 평가점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했다.

광물자원공사, 한국가스공사 등은 이명박정부에서 B(양호) 등급 이상을 받았지만 박근혜정부에선 C(보통)~E(아주 미흡) 등급을 오갔다.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놓고 ‘관치경영’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현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재인정부 들어선 일자리 창출, 윤리 경영 등 사회적 가치 구현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상위 기관들의 평가점수가 급상승했다.

올해 경영평가위원으로 참여한 F씨는 “정부 부처가 경영평가를 통해 공공기관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이라며 “일부 긍정적인 부분은 있지만 과도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평가위원 G씨도 “기재부의 관치경영 관행은 오래된 적폐”라며 “대대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영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를 위해 업무를 기재부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공운위를 기재부 산하가 아닌 독립적 기구로 만들어 평가위원 선임, 평가지표 수정에 대한 정부 입김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립된 공운위가 경영평가 등 공공기관 관련 업무에 대한 의사결정을 총괄하는 방안이다.


남태섭 공공노련 정책기획실장은 “평가위원들이 그동안 주관적으로 공공기관 평가를 진행한 경우가 많았다”며 “기재부가 아니라 독립적인 위원회를 통해 평가위원을 뽑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용석 민주노조 정책연구원장은 “기재부 산하에 공운위가 있다보니 임명되는 민간위원들도 정부 정책을 거드는 정도의 역할 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며 “공운위가 결정하는 사항은 중요한 게 굉장히 많은데 실질적으로 심의가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 제도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해 공운위는 경영평가에서 ‘줄 세우기’를 막자는 취지로 절대평가 제도를 도입하려 했지만 경영평가단과 기재부가 제동을 걸었다. 당시 평가단은 “상대평가를 하지 않으면 기관들이 대부분 높은 점수를 받는다” “사회적 가치 등 최근 3년간 평가지표가 크게 흔들려 절대평가 점수 산정이 어렵다” 등의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E씨는 “상대평가는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기관이 분명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조”며 “이제는 절대평가로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박재현 문동성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