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신임 총리 선출이 보름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우리 정부의 전직 고위 당국자들은 총리 교체를 한·일 관계 개선의 분기점으로 삼으려면 정부도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와 라종일 전 주일대사, 김성한 전 외교부 차관은 ‘포스트아베’ 정국을 맞이하는 데 정부에 강제징용 배상문제에 대한 절충안 마련, 외교와 국내정치의 분리, 대일 ‘파이프라인’ 구축이라는 세 가지 과제를 내놨다.
①강제징용 절충안 마련
신 전 대사는 2일 “강제징용 문제의 경우 옳든 아니든 우리가 해결안을 갖고 적극적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문제를 한국이 2018년 대법원 판결로 흐트러트렸다는 입장이고, 일본 국민 상당수가 이런 정부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우리 대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제철(당시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에서 일본 기업이 피해자들에게 1인당 1억원씩의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일본 정부는 즉각 반발했고, 위자료를 지급하지 않는 일본제철을 상대로 자산 압류 결정까지 내려진 상태다. 신 전 대사는 “일본 주장을 무조건 수용하는 게 아니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갖고 일본과 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차관도 “모든 총리 후보가 강제징용 판결에 부정적이어서 누가 되든 우리 입장이 바뀌지 않는 한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며 “(신일본제철에 대한) 강제집행이 이뤄지지 않도록 정부가 일정 수준의 금전적 부분을 책임진다든가 하는 절충점을 준비해놔야 한다”고 조언했다.
②외교와 국내정치의 분리
양국에 혐한 및 반일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 관계 개선을 도모하려면 정부가 과감하게 외교와 국내정치를 분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라 전 대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내의 극심한 반대 여론에도 일본과의 문화교류 장벽을 허무는 일을 추진했다”며 “지도자가 여론만 좇을 게 아니라 외교를 국내정치에서 떨어뜨릴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그는 “특히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교섭에 활용하려는 건 패착”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8월 일본이 내린 한국 수출규제 조치를 ‘경제보복’으로 규정한 우리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로 대응했다. 그러나 미국 내 우려가 커지자 청와대는 지소미아 종료 6시간을 앞두고 ‘종료 통보’ 효력을 유예시켰다. 김 전 차관도 “외교와 안보를 별개로 하는 투트랙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최근 국회에서 “(과거사 문제는) 그것대로 협의해 나가면서 실질협력은 계속 발전해 나가는 투트랙 어프로치를 갖고 있다”고 밝힌 상태다.
③대일 소통창구 구축
김 전 차관은 “일본 새 지도부와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원활한 소통 창구의 적임자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거론했다. 김 전 차관은 “일본은 내각책임제라 안보실장 같은 관료 출신보다 정치인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일본통으로 알려진 이 대표가 신임 총리 선출 전 일종의 사전 정지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주요언론은 최근 이 대표를 ‘지일파’로 소개하며 “이 대표가 악화한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데 수완을 발휘해 주길 기대하는 목소리가 일본 정계에 적지 않다”고 전한 바 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