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응급실은 한계 상황입니다.”
허탁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은 요즘 20년 만에 응급실에서 근무를 서고 있다. 상황이 너무나 급박해 지난 주말 내내 야간당직까지 섰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등 의료정책에 반대해 전공의들이 집단휴진에 들어간 지 2주째에 접어들면서 응급실을 지킬 의료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는 오랜만에 밤에 환자를 보니 겁도 났지만 이번 사태가 환자의 생명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항상 긴장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전공의들이 자리를 비우면서 가장 어려운 곳은 응급실이다. 응급실은 환자의 생명과 치료 예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허 이사장은 응급실 상황이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고 봤다. 그는 “파업이 2주를 넘어가면 현장이 더 못 버틴다. 이렇게 넘어가면 응급실 현장에서 불행한 결과들이 나올 수도 있다”며 “정부와 의료계, 양측 모두 늦어도 오늘, 내일 안에 합의점을 찾도록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내과도 전공의들의 공백으로 진료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일부 병원에선 교수와 간호사들이 전공의들이 일하던 곳에 투입돼 버티고 있지만 현장에서 환자를 본 경험이 오래된 교수들이 특수 상황에 빠르게 대처하기란 쉽지 않다. 김영균 대한내과학회 이사장은 “지금까지는 버티고 있지만 더 길어지면 의료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환자가 진료를 못 받아 사망하면 여론은 더 나빠지고, 의사들의 사기는 더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도 했다. 김 이사장은 “정부와 의료계가 적정선에서 합의하고 끝내야지 이 사태가 오래 갈 순 없다”고 강조했다.
절박한 현장의 상황을 고려하면 정부의 무조건적 강경 대응은 적절치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지난달 28일 업무개시명령을 불이행한 전공의 10명을 경찰에 고발한 조치는 묵묵히 현장을 지키던 교수들까지 분노하게 만든 일이었다는 얘기다. 전날 정부는 4명에 대해 고발을 철회했으나 아직 분위기는 나아지지 않았다.
고발 당시 대상에 응급의학과 소속 전공의 3명이 포함되자 응급의학회 회원들은 “필수의료라고 평소에 챙겨주는 건 없는데 이럴 때만 ‘본보기’가 된다”며 설움을 터뜨리기도 했다고 한다. 허 이사장은 “응급의학과는 평소에도 폭력에 노출되고 모두가 근무를 기피할 정도로 힘든 곳”이라며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고발되니 젊은 의사들 사이에서 ‘응급의학과 못 해 먹겠다’는 말까지 나와 걱정”이라고 전했다.
김 이사장도 “전공의들이 필수의료과를 지원하지 않는 이유가 있는데 그건 해결하지 않고 오히려 고발조치로 사기를 떨어뜨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환자를 가장 일선에서 진료한 게 응급의학과와 내과였다”며 “필수의료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진료에 임하고 있는데 이 신념을 그대로 밀고 갈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자괴감이 든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최예슬 송경모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