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위스콘신 주 커노샤를 방문해 폭력시위를 비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번 방문이 희생자 유족을 위로하고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법과 질서’를 강조하며 백인 유권자들의 결집을 노린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CNN방송 등은 1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주 관계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커노샤를 찾아가 법 집행을 강조하고, 시위로 인한 중소자영업자들의 피해에 관해 긴 시간 이야기했다고 보도했다.
커노샤에선 흑인 남성 제이컵 블레이크가 세 아들 앞에서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후 인종차별과 경찰의 과잉대응에 항의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당초 토니 에버스 위스콘신 주지사와 존 앤터러미언 커노샤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커노샤 방문을 반대하며 “지금은 대통령이 방문할 시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날 커노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경찰 총격으로 사망한 제이콤 블레이크의 유가족을 만나지 않았다. 대신 화재로 파괴된 가구점 등을 둘러보고 진압에 나선 주 방위군을 칭찬하기 위해 임시 지휘센터를 찾았다. 또 법 집행과 기업, 공공안전 등을 위해 4000만 달러 이상의 연방 자금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역 관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커노샤의 인종차별 철폐 시위에 대해 “평화적인 시위가 아니라 정말 국내 테러의 행위”라면서 “시위자들은 무정부주의자, 폭도, 선동가”라고 비난했다. 더불어 “정치적 폭력을 멈추려면 급진적 이데올로기와 맞서야 한다”면서 “우리는 위험한 반(反)경찰 언사를 규탄해야 한다”고 말했다.
커노샤 방문의 목적은 처음부터 백인 지지층에 ‘법과 질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안전과 안정을 중시하는 대도시 주변 교외 유권자와 중도층 표심 공략을 위한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정치 웹사이트 리얼클리어폴리틱스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은 이날 현재 48.0%로 45.3%인 트럼프 대통령을 2.7%포인트 앞서고 있지만 지난 7월 28일 6.4%포인트에 비해선 격차가 많이 줄어든 상태다.
특히 위스콘신주는 대표적인 스윙 스테이트(정치적 성향이 뚜렷하지 않은 경합 지역)로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대선 때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 불과 0.7%포인트 차로 아슬아슬하게 이긴 곳이다.
CNN방송은 “경합주인 위스콘신을 찾아간 건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자가 이끌고 있는 지역과 폭력을 연관시키려 한 것”이라면서 “스스로를 ‘법과 질서를 대변하는 후보’로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와 지지율 격차가 줄자 트럼프 대통령은 법과 질서의 메시지로 자신의 기반인 백인 지지층에 호소했다”고 풀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고질적인 인종주의가 미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도 “우리는 포틀랜드와 이곳을 비롯해 다른 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 사태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면서 답변을 피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종차별 문제에 ‘법과 질서’를 강조하면서 맞서자 바이든 후보도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새로운 광고전에 나섰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바이든 후보 캠프가 4500만 달러(약 53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들여 일부 시위대의 폭력과 약탈을 비난하는 내용을 포함한 TV 광고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광고 속에서 바이든 후보는 불타고 있는 자동차와 건물,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 장면 등을 배경으로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폭동은 시위가 아니며, 약탈도 시위가 아니다”면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기소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바이든 후보 측은 “이번 광고는 미 전역에서 케이블 TV를 통해 방영되며 애리조나, 플로리다, 미시간, 미네소타, 네바다, 노스 캐롤라이나,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등 9개 경합지역에선 디지털 광고도 진행된다”고 밝혔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