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과 코로나19 책임 회피, 홍콩 국가보안법 사태 등으로 국제적 고립에 처한 중국이 유럽연합(EU)을 찾아가 손을 내밀었으나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 채 오히려 자국내 인권 침해 문제가 집중 부각되는 역풍을 맞았다.
프랑스와 네덜란드에 이어 독일 외무장관도 중국의 아킬레스건인 홍콩과 신장위구르 지역 인권 침해 문제를 제기하며 중국 외교부장에게 대놓고 면박을 줬다. 인권 문제에 대한 서방과 중국의 뚜렷한 인식 차이와 감정의 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1일(현지시간) 중국에 홍콩 국가보안법을 철회하고 국제감시단의 신장위구르 지역 방문을 허용하라고 촉구했다.
마스 장관은 이날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홍콩보안법 영향에 대한 우리의 우려가 여전하다는 것을 (중국도) 알고 있을 것”이라며 “홍콩의 ‘한 나라 두 체제’ 원칙이 완전하게 적용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또 홍콩에서 입법회 의원 선거가 아무 방해를 받지 않고 신속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홍콩 입법 의원 선거는 당초 9월에 실시될 예정이었지만, 홍콩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를 이유로 1년 연기했다.
마스 장관은 “중국이 유엔 감시단의 신장위구르 지역 수용소에 대한 접근을 허가한다면 우리는 매우 환영할 것”이라며 신장 지역 인권침해 문제도 거론했다.
이에 왕이 부장은 “홍콩이든 신장이든 모두 중국의 내정에 속한다. 우리는 중국 사회에 어떠한 외국의 간섭도 원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마스 장관은 왕이 부장이 밀로스 비르트르칠 체코 상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위협한 것도 비판했다.
마스 장관은 이에 대해 “EU는 외국 파트너들을 존중하고, 우리도 비슷한 대우를 받기를 원한다”면서 “왕이 부장의 위협은 이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왕이 부장은 독일 방문 길에 체코 상원 의장의 대만 방문 소식이 전해지자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도전한다면 14억 중국 인민을 적으로 만드는 국제적인 배신행위로서 레드라인을 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왕이 부장이 기자회견에서 이처럼 거친 발언을 하자 독일 정치인들은 격노했고, 체코를 지지하기 위한 EU의 단결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고 SCMP는 전했다.
왕이 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홍콩 민주화인사인 조슈아 웡이 마스 장관을 만나는 행사를 주최한 빌트지에 대해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한편 홍콩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다 영국으로 망명한 네이선 로(27)는 이날 독일 외교부 밖에서 수백 명이 모인 시위를 이끌며 홍콩보안법과 관련한 독일의 지원을 촉구했다.
그는 “베를린은 주제가 중국일 때, 주제가 홍콩일 때 매우 조용하다”며 “(대중국) 유화책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28일 엘리제궁에서 왕이 부장을 접견하고 홍콩의 민주화 요구와 중국 신장위구르 지역의 이슬람 소수민족 인권 문제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장이브 르드리앙 외무장관도 다음날 왕 부장과 회담에서 신장과 홍콩에서 인권상황이 심각하게 악화하는 것에 우려를 표명했다. 스테프 블로크 네덜란드 외무장관도 왕 국무위원을 만나 홍콩보안법과 위구르족 상황에 대해 우려를 전달했다.
왕이 부장은 이번 유럽 순방에서 5개국을 방문했는데, 4개국이 홍콩 및 신장 지역 인권 문제를 제기했다고 SCMP는 전했다.
왕이 부장은 이런 지적이 나올 때마다 신장과 홍콩의 일은 중국의 내부 문제로 다른 나라들이 간섭해선 안 된다고 반박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