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시설로 인해 수십년째 고통받는 포항시민들

입력 2020-09-02 14:00 수정 2020-09-02 14:23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주민들이 해병대 수성사격장 폐쇄·이전 촉구 시위를 하고 있다. 포항시 제공

경북 포항은 철강도시이자 군사도시다. 해병대와 육·해·공군 관련 시설은 물론 미군 부대까지 도시 곳곳에 산재해 있다. 주민 거주지 인근에는 헬기장과 대규모 군 사격장도 있다.

포항에 군부대가 들어선 것은 1959년 해병대 1사단이 이전하면서부터다. 해병대 1사단은 포항시 남구 오천읍, 청림동, 장기면, 동해면 등에 걸쳐 있다. 육상 전투 임무를 하는 단일 부대로는 가장 큰 규모다.

한때 군부대로 인해 호황을 누리기도 했지만 도심이 확장하면서 기피시설로 전락했다. 재산권 침해, 소음 등의 피해를 입은 주민들의 군부대 폐쇄·이전 요구는 수십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군사시설이 많은 것도 문제지만 대부분 도심 인근에 있어 각종 민원을 유발하고 있다.

포항시는 지역주둔 군부대와 관련한 민원을 처리하기 위해 2012부터 군출신의 민관군협력관을 두고 있다. 그러나 마땅한 해결책은 찾지 못하고 있다.

포항시 남구 장기면은 군부대 시설로 인해 수십년간 피해를 보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해병대가 이전하면서 장기면 수성리에 사격장이 들어섰다. 약 1000만㎡의 규모로 마을과 1㎞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주민들은 수십년간 불발탄, 유탄 사고는 물론 소음과 화재 위험에 노출돼 있다.

국방부가 최근 경기도 포천 영평사격장에서 실시하던 헬기 사격을 수성사격장으로 이전하면서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주민들은 사격훈련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며 폐쇄·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포항시의회 이준영 의원은 지난 1일 열린 임시회에서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수성사격장 이전과 집단 이주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 의원은 “장기면은 많은 군 훈련장과 해안 곳곳에 해안초소가 자리해 지역개발은 꿈꾸기도 힘든 상황”이라며 “주민을 이주시킨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수성사격장의 폐쇄와 완전 이전만이 답이다”라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11월 10일까지 ‘수성사격장 주변지역 주민 의식조사 연구 용역’을 통해 주민의견 수렴에 나섰다.
지난달 경북 포항 화진해수욕장 내 육군 화진훈련장의 철조망과 담을 철거하고 있는 모습. 포항시 제공

군사시설로 인해 피해는 포항시 북구 송라면도 마찬가지다.

송라면 화진해수욕장은 지난 1982년부터 육군 제2작전사령부가 공용화기 사격장과 휴양소로 사용하고 있다.

화진해수욕장 일대는 1981년 관광지 개발지구로 지정됐으나 군부대 시설부지에 대한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1993년 지정이 취소됐다.

주민들은 군 시설로 인해 40년 가까이 주변 개발이 안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어 이전·반환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지난달 군사시설 보호를 위해 설치한 철조망과 담장이 철거에 들어가면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포항시와 군 관계자, 송라면 주민 대표 등은 민·관·군협의체 구성과 화진해수욕장 개발을 위한 상생협약을 체결하고 군사시설 철거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할 예정이다.
지난해 경북 포항시 남구 동해면과 청림동 주민들이 해병대 헬기장 건설을 반대하는 궐기대회를 개최했다. 포항=안창한 기자 changhan@kmib.co.kr

포항공항 인근 주민들의 처지는 이보다 더하다. 포항공항 인근은 10만여명이 거주하는 주민 밀집지역이다.

이곳 주민들은 60여년 동안 항공기 소음 등으로 기본 생활권과 재산권, 학습권 등을 침해당하고 있다. 여기에 해병대가 2018년부터 헬기장 건설에 나서면서 불만이 커지고 있다.

해병대는 2021년 창설될 예정인 항공단 운영을 위해 포항공항 내 해군6전단 옆 부지에 헬기 이착륙장과 격납고, 정비시설 설치 공사를 하고 있다. 상륙기동헬기 20여대 등 최종 헬기 40여대를 운용할 계획이다.

주민들의 반대는 강경하다.

민·군겸용인 포항공항에 헬기까지 배치된다면 오천읍, 동해면, 청림동, 제철동은 각종 소음과 미세먼지 등으로 인해 피해를 겪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헬기장 격납고는 완공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철수 포항시의원은 “지금도 민간항공기와 군용기, 해군6전단 헬기 운용으로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며 “헬기장 건설은 절대 안 된다. 하루빨리 다른 지역으로 이전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안창한 기자 chang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