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니 위에 마스크 쓰면 숨 못 쉬어”… 거리 곳곳 한숨

입력 2020-09-02 00:05
80대 최모씨가 1일 서울 은평구 한 길목에서 폐지를 리어카에 실어 나르고 있는 모습. 강보현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시행으로 정부가 자발적 ‘집콕’(집에 콕 박혀있기)을 요구하고 있지만 감염 위험을 감수하며 일할 수밖에 없는 이들도 있다. 환경미화원과 건설노동자, 폐지 수거 노인 등에게 ‘외출 자제 권고’는 딴 세상 얘기다.

서울 강북구에서 폐지를 줍는 70대 A할머니는 1일 “지나가는 사람들이 ‘할머니 마스크 좀 쓰세요’라고 말하는데, 코로나19로 죽기 전에 마스크 때문에 숨 막혀 죽겠다”고 하소연했다. 할머니는 입을 벌려 위아래가 모두 틀니인 모습을 보여주곤 “플라스틱으로 앞이 꽉 막혀 원래도 숨쉬기 어려운데 여기에 마스크를 어떻게 쓰겠느냐”고 했다.

A할머니가 테이프로 포장돼 있는 박스를 칼로 뜯자 누군가 쓰다 버린 일회용 마스크 3개가 나왔다. 할머니는 익숙한 듯 맨손으로 마스크를 집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A씨는 “보통 60㎏에 3000원 정도 쳐주는데 요즘은 이렇게 하루종일 모아도 하루 3000원도 못 버는 날이 부지기수”라고 했다.

서울 은평구에서 폐지를 줍는 최모(83) 할아버지 역시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라고 계속 말하는데, 다른 사람과 접촉하지도 않고 혼자 일하는데 조금만 이해해달라고 사정하곤 한다”며 “나도 감염 걱정이 되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이해는 가지만 마스크를 쓰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턱턱 막혀 폐지를 주울 수 없는 걸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

역시 폐지 줍기로 생계를 잇는 김모(71) 할어버지도 “폐지를 모을 때마다 맨손으로 일회용 마스크 쓰레기를 줍는데 볼 때마다 찝찝하다”고 걱정했다. 그는 “박스 옆에 마스크가 쌓여있으면 만져야 하나 망설여지고 또 안 만지고는 폐지를 줍지 못하니, 우리로서는 별 수 있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 행정명령이 내려진 후 야외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더위와 호흡 불편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서울의 한 자치구에서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하는 40대 남모씨는 “마스크를 쓰면 체온이 2도 정도는 올라간다고 하지 않나. 내내 마스크를 쓰면서 일하니 이번 여름처럼 힘든 건 처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어쩌겠나”고 푸념했다. 출근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남씨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마스크에 스며들었다가 흘러내리기를 반복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공사장에서 일하는 60대 일용직 노동자 김모씨도 “이 더위에 마스크를 쓰고 서있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누가 마스크 쓰고 공사현장에서 일할 수 있겠느냐”고 헛웃음을 지었다. 다른 두 명도 모두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폐기물을 트럭에 싣고 있었다. 목에 걸쳐진 분홍색 수건은 이미 축축하게 젖어있었고 팔목에 걸려있는 하얀 마스크는 공사장 먼지로 새까맣게 때가 타 있었다.

저임금 노동자들에겐 1000원 안팎인 마스크 가격도 큰 부담이다. 서울 강북구에 사는 박모(55)씨는 “하루종일 일해도 5000원도 못 버는 날이 많은데, 일회용 마스크를 어떻게 2~3일에 한 번씩 사겠느냐”며 “약국서 파는 마스크는 욕심도 못 낸다”고 전했다. 박씨는 본인이 쓰고 있는 검은색 면마스크를 손으로 가리키며 “지난 6월 동주민센터에서 두 개 받았는데 3~5일 간격으로 빨아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박씨는 이제 식당이나 상점에 들어가는 것조차 꺼린다고 전했다. 박씨는 “내가 밖에만 다니는 사람이니 감염 걱정이 돼 아예 가게는 들어가지도 않는다. 식당에서 밥도 안 먹고 슈퍼도 가지 않은 지 오래”라고 했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