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일본 차기 총리 선호도 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는 정치인이 있다. 아베 신조 총리의 ‘영원한 정적’ 이시바 시게루(63)다.
31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시바 전 자민당 간사장은 응답자 28%의 지지를 받아 차기 총리 선호도 1위를 유지했다. 고노 다로 방위상이 15%로 2위,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이 14%로 3위를 기록했다. 대망론이 일고 있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11%의 지지를 받아 4위에 그쳤다. 이번 조사는 아베 총리의 사임 표명 직후인 지난 29일부터 이틀간 실시됐다.
같은 기간 실시된 교도통신 여론조사에서도 이시바 전 간사장은 34.1%의 지지를 받아 1위를 차지했다. 스가 장관이 14.3%로 뒤를 이었다.
이렇게 일본 국민들의 여론은 이시바 전 간사장을 향하고 있지만 그의 총리 선출 가능성은 낮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일본은 중의원(하원격)의 다수당, 즉 집권당 총재가 총리를 맡는다. 당 총재는 소속 국회의원과 당원들의 투표로 선출된다. 일반 국민 지지율 1위가 총재 자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시바의 경우 당내 의원 지지세가 경쟁자들에 비해 약하다는 평이다. 그가 이끄는 이시바파 의원은 19명에 불과하다.
아베의 급작스런 사임으로 치러지게 된 이번 자민당 신임 총재 선거는 상황의 긴급성을 고려해 오는 9월 14일 중·참의원 양원 의원총회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당원 투표가 생략돼 선거 승패를 가르는 데 의원들 의사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게 된다. 당원 지지가 두터운 이시바로서는 승리를 위한 핵심 기반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시바 전 간사장을 총리직에서 멀어지게 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은 아베 총리다. 아베는 주변에 “내 후임으로 이시바만큼은 안 된다”고 말할 정도로 이시바에 대해 반감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베가 속한 호소다파 의원이 98명으로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베의 적극적인 반대는 이시바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일본 소장파 정치학자인 나카지마 다케시에 따르면 이시바 전 간사장은 경제정책, 평화헌법 개정 문제 등에서는 아베 총리와 큰 차이점을 보이지 않는다. 이시바는 아베 정권의 핵심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에 대해서 “전체 매출이 증가하지 않고 임금이 오르지 않아 국민들이 경기회복을 실감할 수 없다”면서도 방향성은 옳다고 보고 있다. 각종 경제 지표가 큰 폭으로 개선된 점도 높이 평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본의 교전권을 제한하는 평화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보통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자민당 주류와 다르지 않다. 방위성 대신을 역임하고 일찍부터 평화헌법 개정을 주창해온 만큼 ‘매파’ ‘군사·안보 전문가’라는 이미지도 강하다.
이시바가 아베와 갈라지는 결정적 지점은 미국에 대한 입장이다. 친미주의자로 미·일 동맹 강화를 통한 안보를 일관되게 추구해온 아베와 달리 이시바는 기존 미·일 관계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점에서 대척점에 서있다. 그는 자립국가로서의 일본의 위상을 강조하며 미·일 지위 협정을 대등하게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일본의 영토를 미군을 위한 군사기지로 제공하는 데 회의적이다. 오키나와 미 해병대를 국외로 이전하는 등 미군은 감축하고, 그 공백은 자위대의 해병대 기능을 강화해 채워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