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와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으로 중국의 외교적 고립이 심화하는 와중에 중국의 외교부장이 우군 확보를 위해 유럽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미·중 갈등 구도에서 중국 편에 서달라고 손을 내밀러 갔지만 결국 서방과 중국이 민감한 사안에 대해 서로 인식을 공유하기에는 간극이 너무 큰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31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유럽을 순방 중인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밀로스 비르트르칠 체코 상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해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강력히 비난했다.
왕이 부장은 30일(현지시간) 프랑스 방문 후 독일에서 기자들에게 “대만은 한 부분도 분리할 수 없는 중국 영토의 일부분”이라며 “대만 문제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도전한다면 14억 중국 인민을 적으로 만드는 것이자 국제적인 배신행위로서 그 배후에는 반중세력이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어 “중국 정부와 인민은 이번 일을 결코 내버려 두거나 좌시하지 않겠다”며 “비르트르칠 의장의 근시안적인 행동과 정치적 도박은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비르트르칠 의장 등 상원의원 8명과 각계 대표, 취재진을 포함해 89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체코 방문단은 중화항공 전세기로 대만 북부 타오위안 공항에 도착했다고 30일 중화권 매체들이 보도했다.
왕이 부장은 프랑스 방문에서도 중국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고 경고성 발언을 했다. 30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왕이 부장은 신장과 홍콩의 일은 중국의 내부 문제로 다른 나라들이 간섭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앞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28일 엘리제궁에서 왕이 부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홍콩의 민주화 요구와 중국 신장 지역의위구르족 인권 문제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고 대통령실이 전했다.
장이브 르드리앙 외무장관도 이튿날인 29일 왕 부장과 회담에서 신장과 홍콩에서 인권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하는 것에 우려를 표명했다.
프랑스는 그동안 홍콩 민주화 시위와 신장 위구르족 인권 탄압 문제에서 중국 정부를 강하게 비판해왔으며 이달 초에는 홍콩과의 범죄인 인도조약 비준 절차를 전격 중단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왕이 부장의 유럽 5개국 순방에 이어 양제츠 중국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도 미얀마와 유럽 2개국을 순방하며 우군 확보에 나설 예정이다. 중국의 최고위급 외교관이 잇달아 유럽을 찾는 것은 이례적이다.
중국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양제츠 정치국원은 1~3일 미얀마와 스페인, 그리스를 순방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양제츠는 최근 싱가포르와 한국을 방문했었다. 왕이 부장은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노르웨이, 프랑스, 독일을 방문했다.
중국의 최고위급 외교관이 순차적으로 세계 각국을 방문하는 것은 미·중 갈등에서 미국에 대항할 ‘우군’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로 보이지만 유럽과 중국의 인식차가 너무 커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팡중잉 중국 해양대 교수는 “중국 입장에서 EU와의 관계 악화는 미국과의 갈등 보다 덜 위협적”이라면서도 “중국은 유럽 국가들이 중국 내 신장위구르와 홍콩의 인권 침해 문제나 남중국해 갈등, 화웨이 문제 등에 대해 느끼는 우려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