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 남성 뱃속으로 삼켜진 ‘격리’…코로나 시대 풍경?

입력 2020-09-01 05:06 수정 2020-09-01 05:06
안종현 작, '멀리 가까이 중간-정신병원-#1', 피그먼트프린트, 2020년. 작가 제공

와이셔츠를 보란 듯이 열어젖힌 양복 입은 남성의 뱃속으로 표정 잃은 건물들이 보인다. 가지치기도 하지 않아 헝클어진 정원수, 수거하지 않은 쓰레기 등 마당의 풍경이 뭔지 모를 불안감을 준다. 저 건물에 들어간 이들은 고래 뱃속에 난데없이 삼켜진 피노키오 부자처럼 일말의 공포감을 느끼지 않을까.

그런데 사진에는 잘렸지만, 정문을 장식한 거대한 옥외 광고판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단다.

“이제 마음의 문을 여세요.”

이곳은 도대체 어디일까. 이 작품은 서울 중구 서소문동 대한항공 빌딩 1층 일우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사진작가 안종현(38) 개인전 ‘당신으로부터 나의 거리’에 나왔다. 제11회 일우사진상 수상 기념전이다. 얼마 전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촬영 장소가 서울 광진구 ‘XX 동 정신병원’이라고 귀띔했다.

1961년 지은 국내 첫 국립정신병원이다. 이후 사회적 거부감을 주는 ‘정신’이라는 글자를 떼어내고 ‘국립서울병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지금은 새 건물이 신축돼 국립정신건강센터로 거듭나며 반세기 전 지은 옛 건물은 사라졌다. 저 옥외 광고판도 사라졌다. 그 자리엔 녹지공간이 조성된다.

“2016년 봄이었어요. 그해 가을 옛 건물이 철거되기 전이었지요. 저 장면을 보고 엄청나게 놀랐습니다. 정문 안에 사람들이 걷고 있는데 마치 좀비처럼 보였어요. 정신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여야 하므로 걷는 거라는데….”

그날 그 장면이 충격은 작가가 ‘격리’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과거에도 미친 사람이 있었지만, 그들은 격리되지 않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생활했지요. 광인을 특정 공간에 격리 수용한 것은 근대의 산물입니다. 그렇다고 격리되지 않은 우리는 멀쩡한가요? 우리 모두 어떤 부분을 건드리면 미치는 순간이 있지 않은가요.”
안종현 작, '멀리 가까이 중간-정신병원-#10', 피그먼트 프린트, 2020년.

전시장에는 그 병원의 ‘커튼’만 덩그러니 찍은 작품, 예술작품이 걸린 복도, 라디에이터 등을 찍은 작품이 걸렸다. 그저 사물을 찍은 것인데도 그 안에서 모종의 음모가 일어나는 것 같은 으스스한 느낌을 준다.

누가 누구를 격리할 것인가. 올부터 진행된 코로나 19 팬데믹 사태는 우리가 ‘격리’의 문제를 반추하게 한다. 어제까지 멀쩡하게 생활했던 사람도 ‘확진자’가 되어 위험인물이 되는 역설이 일어나고 있다. 작가는 “전시 제목 ‘당신으로부터의 나의 거리’는 그 거리 자체가 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며 “예기치 않게 제 작품 세계가 코로나 시대를 예견하는 결과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작가는 이번 ‘정신병원’ 연작을 찍기 이전부터 ‘격리’라는 주제에 관심을 보여왔다. 사람들이 발길이 닿지 못하는 비무장지대, 불이 타버린 공장 등 장소가 갖는 심리적, 사회적 거리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이 함께 나왔다. 예컨대, 지뢰밭이 무성한 비무장지대는 접근 금지의 격리된 공간이 됐지만, 그 격리가 오히려 녹색이 무성한 원시의 공간을 되살려냈는데, 그의 사진에서도 녹색이 광기처럼 빛난다.

작가는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순수사진을 전공했고 KT&G 상상 마당 올해의 작가 등에 선정된 바 있다. 일우사진상은 한진그룹 산하 일우재단이 유망한 신진작가를 발굴해 국제적 경쟁력을 지닌 세계적인 작가로 육성하고자 2009년 제정했다. 전시는 10월 20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