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 통보하다 무릎 꿇은 적도…” 어느 역학조사관의 하루

입력 2020-08-31 13:27 수정 2020-08-31 14:11
경기도 역학조사관인 김재현(오른쪽)씨와 수원 장안구 보건소 역학조사팀 소속인 김범수(왼쪽)씨. BBC 코리아

“무릎 꿇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린 적도 있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2차 대유행으로 고군분투하는 역학조사관들의 일상이 공개됐다. 이들은 확진자와 접촉한 이들에게 자가격리를 통보하면 거센 항의를 받기도 한다며 현장에서 겪는 고충을 털어놨다.

BBC코리아는 28일 유튜브에 ‘코로나를 쫓는 사람들, 역학조사관들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다. 5분36초짜리 영상에는 경기도 역학조사관 김재현씨와 수원시 장안구보건소 역학조사팀 소속 김범수씨가 등장했다.

영상 속 두 사람은 밤 12시를 넘긴 시각까지 바쁘게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재현씨는 “지난주를 기점으로 굉장히 바빠졌다”고 했고, 범수씨는 “시간을 보니 새벽 1시20분”이라며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계속 일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광복절 집회 이후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업무량이 늘었다는 뜻이었다.

이들은 확진자와 접촉한 이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코로나19 검사 결과 등을 전했다. 전화를 받은 한 확진자는 “광화문에 갔다 왔다고 하면 그냥 걸렸다고 하는 거 아니냐”며 검사 결과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그러자 범수씨는 “그렇지 않다. 그건 거짓말 유포”라고 단호히 말했다.

재현씨는 “자가격리를 통보하면 저항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고 했다. 범수씨도 “‘소송을 걸겠다’거나 ‘해코지를 하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었다”면서 “한번은 무릎을 꿇고 ‘저희를 좀 이해해달라’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한 확진자가 남편의 이름을 알려달라는 범수씨에게 “(남편이) 이름을 절대 말하지 말랬다. 남편과 상관없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장면도 나왔다. 재현씨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거짓말을 밝히기 위해 추궁하는 상황이 굉장히 지친다”고 했다. 범수씨도 “저희를 믿고 거짓말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범수씨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깜깜이 감염이 계속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모든 노력으로도 이걸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가장 공포스럽다”며 “더는 확진자를 조사할 필요도 없는 상황이 올까봐 (두렵다). 이런 행위조차 의미 없는 상황이 온다고 생각하면 ‘내가 지금껏 뭐했나’ 이런 생각이 들 것 같다”고 했다.

지난 5월 결혼한 재현씨는 몰디브로 떠날 예정이었던 신혼여행을 취소했다고 한다. 재현씨는 “언젠가는 가야죠”라며 “일상으로의 복귀가 이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고 안정되지 않을까요”라고 희망을 드러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31일 0시 기준 일일 신규 확진자는 248명(누적 1만9947명) 증가했다. 신규 확진자 수는 수도권 집단감염이 본격화된 지난 14일부터 연일 세 자릿수를 나타내고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1차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대본 회의에서 “이번 주가 앞으로의 증가세를 꺾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분수령”이라며 “이번 1주일은 최대한 집에 머무르고 접촉을 최소화해달라”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