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가장으로서 정부의 실정을 풍자해 상소문 형식으로 청와대 국민청원 ‘시무 7조’를 쓴 ‘진인(塵人) 조은산’이 자신의 주장을 반박한 ‘시집 없는 시인’ 림태주의 글을 재반박하면서 온라인 설전이 격화되고 있다.
조은산은 30일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백성 1조에 답한다’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그는 림태주를 향해 “너의 백성은 어느 쪽 백성을 말하는 것이냐. 고단히 일하고 부단히 저축해 제 거처를 마련한 백성은 너의 백성이 아니란 뜻이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나는 5000만의 백성은 곧 5000만의 세상이라 했다”며 “너의 백성은 이 나라의 자가보유율을 들어 3000만의 백성뿐이며, 3000만의 세상이 2000만의 세상을 짓밟는 것이 네가 말하는 정의에 부합하느냐”고 꼬집었다.
조은산은 “너는 편전과 저잣거리에서 분분한다지만 정작 너는 지상파 채널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느냐. 전 대통령에게 분해 대사를 읊던 전 정권 시절 개그맨들은 어디서 분분하고 있는지 나는 궁금하다”고 썼다.
앞서 림태주는 28일 페이스북 상소문에 임금이 답하는 형식의 글 ‘하교_시무 7조 상소에 답한다’를 올렸다. 그는 조은산의 ‘시무 7조’에 대해 “문장은 화려하나 부실하고, 충의를 흉내내나 삿되었다. 언뜻 유창했으나 혹세무민하고 있었다. 편파에 갇혀 졸렬하고 억지스러웠다”고 비판했다.
림태주는 “너의 그 백성은 어느 백성이냐. 가지고도 더 가지려고 탐욕에 눈먼 자들을 백성이라는 이름으로 퉁치는 것이냐”면서 “아직도 흑과 백만 있는 세상을 원하느냐. 일사불란하지 않고 편전(임금이 평상시에 거처하는 궁전)에서 분분하고, 국회에서 분분하고, 저잣거리에서 분분한, 그 활짝 핀 의견들이 지금의 헌법이 원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림태주는 또 ‘지금 정부가 이성적이지 않고 감성에 치우쳐 나랏일을 망치고 있다’는 ‘시무 7조’ 내용을 거론하며 “열 마리 양 가운데 한 마리를 잃은 목동이 그 한 마리를 찾아 헤매는 것이 이성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나에겐 그것이 지극한 이성이고 마땅한 도리”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조은산은 “감히 아홉의 양과 길 잃은 양, 목동 따위의 시덥잖은 감성으로 나를 굴복시키려 들지 말라”면서 단칸방에서 배달과 공사판 일을 하던 자신의 가난한 과거를 돌이켰다. 그는 “나는 정직한 부모님의 신념 아래 스스로 벌어먹었다. 그러나 가진 자를 탓하며 ‘더 내놓으라’ 아우성치지 않았고 남의 것을 탐하지 않았다. 비켜라, 강건한 양에게 목동 따위는 필요없다”고 했다.
조은산은 끝으로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부탁한다. 시인 림태주의 글과 나 같은 못 배운 자의 글은 비교할 것이 안 된다. 정치적 입장을 배제하고 글을 평가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림태주를 향해서는 “건네는 말을 이어받으면서 경어를 쓰지 못했다. 내가 한참 연배가 낮다.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덧붙였다.
‘시집 없는 시인’으로 유명한 림태주는 1994년 계간 ‘한국문학’으로 등단했으나 시집은 내지 않았다. 시보다는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로 더 유명해졌다. 그가 2014년 출간한 산문집 ‘이 미친 그리움’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림태주 시인의 글에서는 밥 짓는 냄새, 된장 끓이는 냄새 그리고 꽃내음을 맡을 수 있다”는 추천사를 썼다.
한편 조은산이 지난 12일 작성한 ‘시무 7조’ 청와대 청원 글은 보름여 비공개 상태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청와대는 27일 뒤늦게 이 글을 공식 게재했다. 공개된 지 하루 만에 청와대 답변 요건(20만 동의)을 넘어 30만명 이상이 공감을 표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