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악화를 이유로 전격 사임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후임자가 다음달 15일쯤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아베의 영원한 정적 이시바 시게루(63) 전 자민당 간사장과 아베가 당초 후계자로 점찍은 것으로 알려진 기시다 후미오(63) 자민당 정조회장이 출마에 강한 의욕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30일 아베 정권의 만년 2인자 스가 요시히데(71) 관방장관도 출사표를 던졌다. 차기 총리선거는 이들 ‘빅 3’ 후보를 중심으로 치러질 전망이다.
NHK방송은 이날 자민당 신임 총재 선출과정 진행을 맡은 당내 2인자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과 모리야마 히로시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이 전날 저녁에 만나 신임 총재 선출 방식에 대해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일본은 중의원(하원격)의 다수당 총재가 총리를 맡는다. 자민당은 현재 중의원 과반을 점하고 있다.
두 사람은 현 상황의 긴급성을 감안해 오는 9월 13~15일 자민당 중·참의원 양원 의원총회를 열어 신임 총재를 선출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원 투표가 포함되는 전당대회 방식이 아닌 의원들과 각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 지부 대표들만 모여 선거를 치르는 약식 투표다. 전자는 의원 394표에 당원 394표를 더해 합계 788표로 총재를 뽑고, 후자는 의원 394표에 도도부현 지부 대표 141표를 더해 합계 535표로 총재를 선출한다.
후자의 경우 의원 표가 전체 4분의 3 가량을 차지해 다수당 의원들 사이 파벌 정치로 총리를 뽑는 일본 정치의 특성이 보다 강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전자는 후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민 의사가 반영되는 방식이다.
아베에 반기를 들며 높은 대중적 지지도를 얻었으나 의원 지지세는 약한 이시바 전 간사장에게는 불리한 선거 방식이다. 당내에서는 이번 선거 방침을 ‘이시바 뭉개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시바의 측근 중의원은 이와 관련 아사히신문에 ‘밀실정치’라고 비판했다.
‘아베 저격수’로 불리는 이시바는 최근 2년간 ‘포스트 아베’ 여론조사에서 늘 선두를 지켰지만 그가 이끄는 이시바파 의원은 19명에 불과하다. 아베가 속한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가 98명, 선거 경쟁자인 기시다파가 47명인 것을 감안하면 비주류 소수파다. 아베 총리가 차기 총리로 이시바만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점도 걸림돌이다.
이 와중에 무계파인 스가 장관을 차기 총리로 옹립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다수파 파벌들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교도통신은 이날 스가 장관이 입후보 의사를 니카이 간사장에게 전했다고 보도했다. 당초 “총리직은 전혀 생각해본 적 없다”며 강하게 부인해온 스가이지만, 아소 다로 경제부총리가 이끄는 당내 2대 파벌 아소파(56명)·3대 파벌 다케시타파(54명) 등이 안정감을 이유로 그를 지지하면서 출마 쪽으로 맘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현 내각 2인자인 스가는 아베 내각에서 7년 8개월 최장수 관방장관을 지냈다. 아베와 이념·정책적으로 가장 유사한 인물이다. 새 내각이 코로나19 관리용 1년짜리 비상내각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정책 연속성 측면에선 안정적인 스가가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라는 평가다. 아베 총리 역시 대외적으로 기시다를 차기 총리로 밀고 있는 듯 보이나 사실은 위기관리 능력을 인정받은 스가를 가장 선호하고 있다는 게 일본 정치평론가들의 분석이다.
스가의 급부상으로 가장 불리해진 것은 기시다 정조회장이다.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당내 의원 지지는 폭넓지만 낮은 국민 인지도에 발목을 잡혔다. 총재 선거 이후 치뤄질 중의원 선거를 이끌기에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