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대부’ 허인회(56·구속 기소) 녹색정보통신 대표를 내세워 영업해온 도청탐지업체 G사가 정부부처별 도청 대비 예산 증액 방안을 직접 만들었으며, 이 방안이 실제 여러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편성하고 국회가 심의하는 국가 예산을 업체와 브로커가 주무르려 했던 셈이다.
검찰은 허씨 로비 과정에 등장한 국회의원 다수를 최근까지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원들은 허씨처럼 이익을 공유한 사실이 없어 입건되지 않았다. 하지만 “향후 문제가 될 줄 알았다”는 국회 내부 증언도 나왔다. 법조계는 특정인의 부탁으로 국가 예산이 집행될 수 있다는 허점이 발견된 것을 이번 수사의 의미로 본다.
30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서인선)는 허씨의 G사 제품 국가기관 납품 로비에 관여된 의원 약 10명을 최근까지 참고인 조사했다. 검찰은 서면조사 등을 거쳐 의원들의 금품 수수나 불법 인식 사실은 없었다고 결론지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의원은 2명 이상이지만 구체적 인원은 답변할 수 없다”고 했다.
여러 의원은 대부분 허씨가 G사에서 불법적 수수료를 받은 일 등을 몰랐다는 태도다. 도청탐지 장비 도입이 실제 필요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A의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일본 장비가 아닌 국산 장비를 도입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예산 증액을 주장한 것”이라며 “G사 사람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많은 의원들이 갑자기 도청탐지 장비 도입을 역설해 석연찮았다고 증언하는 이도 있었다. B의원은 “2014년쯤 복수의 현역 의원이 민원 성격의 요청을 해 왔다”며 “나중에 분명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사업 요청을 묵살했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G사가 만든 조악한 예산 증액 방안이 그대로 상임위를 통과하고 예결위에 상정된 단서를 포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방안은 예산을 최종 증액·삭감하는 계수조정소위에서 걸러졌다. 검찰은 허씨를 기소하며 “특정 의원실의 경우 부처의 예산 담당자로부터 대면 보고를 받았다”는 사실까지 공개했다. 향후 공판에서 G사 작성 문건 등 압수물이 공개되면 로비에 동원된 의원 면면이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
검찰은 애초 구속만료일이던 26일을 하루 넘긴 27일 허씨를 재판에 넘겼다. 허씨가 지난 25일 법원에 구속적부심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다만 서울북부지법은 26일 “구속 뒤 사정변경이 없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사유로 청구를 기각했다. 허씨는 검찰의 ‘별건수사’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구승은 이경원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