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경 아닌 완경?” 성차별 용어 논쟁, 여자들에게 물었다

입력 2020-08-29 00:05
폐경 대신 완경이라고 표현한다는 온라인 커뮤니티 글(왼쪽)의 댓글에서 유모차와 자궁, 처녀막 또한 성차별 및 여성혐오적 시각이 담긴 단어로 언급됐다. 오른쪽은 본문과 무관한 이미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게티 이미지뱅크

‘폐경 대신 완경이라고 말하는 게 그렇게 웃긴가요?’

지난 19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폐경의 부정적 어감이 꺼려져 대신 완경이라고 표현한다는 여성의 글이 게시됐다. 글쓴이는 “완경이라고 말했더니 주변에서 이상하게 봤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네티즌의 반응은 갈렸다. 공감한다는 댓글도 있었지만 고쳐 쓸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이런 의견을 남긴 이들 중 상당수가 자신을 여성이라고 소개했다.

댓글에는 폐경 외에도 유모차, 처녀막, 자궁 등의 단어가 등장했다. 각각 성차별적 의미가 담겼거나 여성에 대해 부적절한 인식을 심어준다고 일부 네티즌은 주장했다. ‘닫을 폐’가 쓰인 폐경은 ‘월경이 닫히다’라는 뜻으로 여성으로서 역할이 끝났다는 부정적 뉘앙스를 줄 수 있어 ‘완성됐다’ ‘마무리됐다’는 의미의 완경이 대체어로 언급되고는 한다. 유모차는 어머니의 책임만 강조되므로 ‘유아차’로, 처녀막은 여성의 처녀성을 과도하게 부각하므로 ‘질근육’으로, 자궁의 ‘자’는 ‘자녀’라는 뜻도 있지만 아들이라는 의미도 담겼기에 ‘포궁(세포가 분열해 아기가 되는 공간)’으로 바꿔 쓰자는 시각이 있다.

인터넷 공간 밖 여성들의 생각은 어떨까. 국민일보는 26일 폐경, 자궁, 유모차, 처녀막 등 4개 단어의 뜻과 대체할 용어를 20~50대 여성 13명에게 설명해주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20대 4명, 30대 4명, 40대 3명 50대 2명이 답했는데 연령대와 상관없이 “당연히 고쳐 써야 한다” “아직 낯설다”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다 달랐던 의견…‘처녀막’ 나오자 한목소리

13명 가운데 4개의 단어 모두 성차별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는 20대 2명과 40대 2명 등 총 4명이었다. 나머지 9명 중 7명은 일부 동의한다고 했고, 마지막 2명은 지나친 논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4개 모두 성차별적이라고 답한 이모(27)씨는 “늘 사용하는 단어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며 “하나씩 고쳐나간다면 인식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조모(28)씨도 “언어는 그 시대의 관념을 반영하므로 잘못된 것은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모(42)씨는 “‘처녀막’이라는 단어를 시작으로 순결한 여성이 ‘자궁’을 통해 대를 이을 아들을 생산하고 어머니로서 자녀를 ‘유모차’에 태워 키운 후 ‘폐경’을 거치며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게 되는 흐름이 읽혀 씁쓸하다”고 말했다. 안모(41)씨도 “의미를 알고 보니 기존 단어를 쓸 필요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일부에만 동의했던 7명의 경우 유모차가 성차별적 단어라는 데 대체로 공감했다. 양육의 책임이 어머니에게만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가장 의견이 분분했던 것은 자궁이었다. 인터뷰 전부터 이들 단어의 뜻과 대체 용어까지 알고 있었다고 유일하게 답한 황모(30)씨도 자궁만큼은 “아들보다 자식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해 문제를 못 느낀다”고 했다. 폐경의 경우 “월경과 여성의 삶은 별개라고 생각해 부정적 의미를 읽지 못하겠다”는 의견이 일부 있었다.

답변자 거의 전원이 입을 모아 부적절하다고 꼽은 단어는 처녀막이었다. 안모(28)씨는 “처녀막은 듣자마자 여성의 순결이 강조되는 느낌이라 고쳐 사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고, 이모(31)씨도 “처녀막으로 성관계 유무를 판단하거나 여자는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심리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각인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궁·폐경·유모차의 뜻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답한 정모(36)씨도 처녀막에 대해서는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50대 중반인 김모씨와 최모(30)씨만 문제없는 표현이라고 했다. 반면 김씨와 같은 50대인 A씨는 “처녀막과 폐경은 어감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 밖에도 ‘여교수’ ‘여경’ 등 직업 앞에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 붙는 것과 ‘안사람’ ‘처녀작’ 등의 단어에 불편함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다만 박모(24)씨는 “보는 관점에 따라 성차별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특히 처녀막은 나도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면서도 “성차별적 의도 없이 당연하게 써온 단어들인데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했다.

인스타그램 투표 결과

더 많은 여성들의 생각을 들어보기 위해 25일 하루 동안 인스타그램 이용자 17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55명이 단어를 바꿔 사용하는 것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나머지 20명 중 일부는 박씨처럼 “원래 있던 단어가 여성 인권 측면에서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모르겠다” “문제가 없으면 사람들이 아는 그대로 쓰는 게 좋지 않나”라고 했다.

“의도 없어도 수용자 입장에서 봐야”

차별적 언어에 대해 연구해온 이정복 대구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차별 표현의 사용은 사용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수용자인 듣는 사람의 반응이 중요하다”며 “차별이나 혐오 의도가 없더라도 듣는 사람이 그렇게 느끼는 표현이라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회의 성차별 문화를 바꾸는 것이 근본적이겠지만 언어 변화를 통해 이를 앞당기는 것도 필요하다”며 “유모차처럼 성차별적 의미가 분명하고 인식이 쉬운 단어부터 고쳐 나가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여성들이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차별적 의미를 잘 모르거나 낯선 단어를 의식적으로 써야 하는 심리적 부담감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각 단어들에 대해서는 “포궁은 다소 낯설기 때문에 이보다 쉬운 ‘아기집’이라는 말도 이미 사전에 실려 있다. 유모차도 유아차 또는 ‘아기차’로 써야할 것”이라며 “폐경은 어감이 좋지 않을 뿐더러 ‘월경을 폐기함’으로 잘못 이해되는 경우가 있어 익숙해진다면 완경으로 바꿔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황금주 인턴기자 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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