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무 7조 상소문’ 쓴 청원인은 노무현 지지했던 30대 가장

입력 2020-08-28 05:28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청와대 국민청원에 ‘다(多) 치킨자 규제론’과 ‘시무 7조’ 등 현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풍자 상소문이 등장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자신을 ‘진인(塵人) 조은산’이라고 소개한 청원인의 정체가 노무현을 지지했던 평범한 30대 후반의 가장으로 드러나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일보는 27일 조은산이라는 필명의 네티즌과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청원인은 한국일보에 “큰 업적을 이룬 사람도, 많이 배운 사람도 아니고 그저 세상 밑바닥에서 밥벌이에 몰두하는 애 아빠일 뿐”이라며 “언론에 자신을 알리려니 손이 떨린다”고 했다.

보도에 따르면 조선시대를 연상케 했던 말투와 남다른 필력 탓에 네티즌들 사이에선 해당 청원인이 중년의 소설가나 시인 중 한명이 아니겠냐는 추측이 난무했지만 실제 그는 중년도 아닌 인천에 사는 30대 후반의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는 어린 두 자녀를 둔 아빠로 실명은 공개되지 않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자신을 “글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은 박봉의 월급쟁이”라고 소개한 이 청원인은 스스로를 진인, 즉 먼지 같은 사람이라고 한 이유에 대해 “일용직 공사장을 전전했던 총각 시절, 현장에 가득한 먼지와 매연이 내 처지와 닮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베일에 쌓인 청원인 때문에 본의 아니게 같은 이름의 조은산 작가들이 주목받았고 특히 인천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동명이인의 시인이 자신의 글 때문에 곤란해졌다는 얘기를 듣자 더 이상 피해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용기 내 인터뷰에 응했다고 부연했다.

청원인은 현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글을 쓰고 있다. 첫 청원 글은 한 달 전인 지난달 14일 처음으로 ‘치킨계의 다주택자 호식이 두 마리 치킨을 규제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려 주목받았다. 치민 브랜드의 상호를 통해 다주택자에 대한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규제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내용을 담고 있다.

주택을 치킨에 비유하고 다주택자를 ‘다치킨자’로 일시적 2주택자를 ‘일시적 2치킨’이라고 꼬집었다. 이를 본 많은 네티즌은 ‘참신하다’며 공감을 표했다. 그러나 특정 회사를 가리키는 청원이라는 이유로 비공개 처리되자 다음 날 ‘다치킨자 규제론을 펼친 청원인이 삼가 올리는 상소문’이라는 글을 다시 올렸다. 해당 글엔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파직을 요구하는 내용도 담겼다.

지난 12일엔 ‘시무 7조를 주청하는 상소문을 올리니 삼가 굽어 살펴주시옵소서’라는 청원 글을 올려 네티즌들의 눈길을 끌었다.. 청원에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어 지난 24일에도 ‘진인 조은산이 뉴노멀의 정신을 받들어 거천삼석의 상소문을 올리니 삼가 굽어 살펴주시옵소서’라는 청원을 올려 김현미 장관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 등의 파직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응원했던 진보도 보수도 아닌 평범한 가장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에 쓴소리를 한 이유에 대해 “내가 가진 얕은 지식으로 현시대를 보고 문제점을 느꼈고 그 부분을 얘기했을 뿐”이라며 “내가 지지하지 않은 정권을 향한 비판에 그치는 것이 아닌, 내가 지지하는 정권의 옳고 그름을 따지며 쓴소리를 퍼부어 잘되길 바라는 것이 내 꿈”이라고 했다.

그는 “묻힌 청와대 청원이 온전히 공개돼 국민으로 동의를 받을 수 있게 돼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알려지는 게 두렵다”며 “소신을 갖고 글을 쓰기 위해 평범한 소시민의 자리를 계속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청원인은 이어 “앞서 말한 꿈이 이뤄질 수 있도록 자신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접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지난 12일에 올라왔던 해당 청원이 비공개 처리되자 청와대가 정부의 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한 청원을 일부러 숨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사실과 다르다. 정상 절차에 따라 공개 여부를 검토하는 단계”라고 해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연합뉴스를 통해 “명예훼손 성격의 청원이나 중복청원 등이 많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해부터 100명 이상 사전동의를 받은 글만 내부 검토를 거쳐 공개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며 “이번 청원 역시 현재 공개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계속됐고 해당 청원은 27일 오후 다시 공개됐다. 이후 28일 오전 5시 현재 18만 명이 넘는 네티즌의 동의를 받았다. 청원 마감은 다음 달 26일이다. 이 청원이 다음 달 11일까지 동의 인원이 20만명을 넘으면 청와대는 공식 답변을 내놔야 한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