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난 5월 최악(비관 시나리오)을 가정한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내놓으면서 정작 당시에도 우려됐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2차 확산 가능성을 배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웅 한은 조사국장은 27일 경제전망 기자설명회에서 “지난 5월에 봤던 비관 시나리오는 국내에서 코로나19의 국지적 확산은 간헐적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지금 같은) 대규모 재확산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가정했다”고 설명했다. 당국이 비관적인 상황을 전제한다면서도 실제 최악을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코로나19 재확산은 사태 초기부터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우려하던 일이었다는 점에서 이를 고려하지 않은 한은의 판단은 안이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시장 충격 등을 우려한 한은이 성장률 전망치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보수적 전제를 고수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결국 코로나19 재확산과 함께 한은의 성장률 전망치 하단은 종전 -1.8%에서 -2.2%로 낮아지며 앞자리가 바뀌었다. 이번 재확산이 겨울까지 이어지는 상황을 가정했다는 게 한은 설명이다.
한은은 현재 예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황(낙관 시나리오)에서 한국 경제가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을 1% 역성장에 가까운 -0.9%로 제시했다. 지난 5월 전망치 0.5%에서 1.4%포인트 끌어내린 수치다.
이 전망을 충족하려면 이달 중순부터 거세진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2차 확산이 이르면 다음 달 중 진정돼야 한다. 1.3% 역성장을 예상한 중립 전망(기본 시나리오)은 코로나19 재확산세가 오는 10월 말 이후 가라앉는 상황을 가정했다.
코로나19 재확산과 함께 한은이 올해 성장률 전망을 크게 낮추면서 외환위기가 몰아진 1998년(-5.1%) 이후 최악의 역성장을 기록하리라는 우려에 더욱 다가섰다. 이미 기본 시나리오로 제시된 성장률 전망치가 사상 두 번째로 크게 후퇴한 80년(-1.6%)과 0.3% 포인트차에 불과하다. 한은이 성장률을 보수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성장률은 80년 수준에 근접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현행 2단계에서 3단계로 높일 경우 예상 성장률은 더 후퇴할 수밖에 없다. 한은은 기본 시나리오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현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전제했다. 비관 시나리오에서 3단계 격상을 고려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3단계로 격상되더라도 구체적인 내용과 지속기간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파급 영향을 특정 수치로 말씀드리기는 곤란하다”면서도 “아무래도 국내 실물경제 회복세가 제약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주가와 환율에 분명히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한은과 정부,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내외 기관의 전망이 비현실적으로 낙관적이었다고 본다”며 “가장 현실적 수치는 지난 6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코로나19 2차 확산을 가정하고 내놓은 -2.5%”라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