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로 사망한 직원의 직계가족 1명을 기업이 특별채용하게끔 한 단체협약 조항은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노동자의 특별한 희생에 대한 보상 의미가 있고, 정년퇴직자·장기근속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일과는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이번 결론은 산재 사망자 자녀의 특별채용이 ‘고착된 노동자 계급’ 출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던 법원의 태도를 바꾼 것이기도 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27일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숨진 노동자 A씨의 유족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사건의 상고심에서 “유족 채용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던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관 13명 가운데 11명이 파기환송 취지의 다수의견을 밝혔다. 2명의 대법관만이 “공정한 채용에 관한 법 질서에 위반된다”며 반대의견을 폈다.
대법원 공개변론까지 거친 이번 사건의 쟁점은 “업무상 재해 유족 중 1인을 특별채용한다”는 단협 조항이 과연 민법상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내용’인지의 여부였다. A씨는 2008년 기아차에서 현대차로 직장을 옮긴 직후 백혈병을 진단받아 2010년 사망했다. 근로복지공단은 A씨의 사망이 기아차 근무 당시 벤젠에 노출된 영향이었다고 판단했고, 유족은 사측이 자녀 채용을 거부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에서는 이 특별채용 단협 조항의 효력이 없다는 판단이 이뤄졌다.
하지만 대법원은 “단체협약 조항은 유효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A씨 자녀의 특별채용에는 사망한 노동자 가족의 생계를 해결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공정 달성에 기여하는 의미가 담겼다고 봤다. 특별채용이 ‘채용의 자유’를 과도하게 훼손한다거나, 구직 희망자들의 채용 기회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현대차·기아차 측 항변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사측이 자발적 의사로 특별채용 조항에 합의했으며, 채용 대상도 ‘결격사유가 없는 근로자’로 한정됐다고 지적했다. 또 현대차·기아차의 큰 사업 규모에 비해 이 단협 조항을 근거로 채용될 유족은 매우 적은 점도 감안돼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현대차·기아차 측은 앞선 공개변론에서 “취업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이 같은 단협 조항은 고용 세습으로 이어진다”는 우려를 표했었다.
이기택 민유숙 대법관은 반대의견에 섰다. “유족 보상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직 희망자라는 제3자의 희생을 기반으로 하면 안 된다”는 논리였다. 채용 과정의 차별은 고용정책기본법 등으로 금지돼 있으며, 이 단협 조항이 자칫 “능력이 있으면 공평한 절차를 통해 채용될 수 있다“는 정당한 신뢰를 깰 수도 있다고 두 대법관은 강조했다. 이들은 “나이가 많은 직계존속이나 배우자, 신체적 결격사유가 있는 유족은 혜택을 받기 어렵다”며 보상 측면에서도 불공평한 대목이 있음을 지적했지만 소수의견에 머물렀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