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흑인 남성 제이컵 블레이크가 경찰의 과잉 총격으로 중태에 빠진 가운데 규탄 시위에 나선 시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용의자의 얼굴이 공개됐다. 모자를 뒤집어쓴 채 시민 2명을 살해한 그는 앳된 얼굴을 가진 17세 백인 소년이었다.
26일(현지시간) CNN·뉴욕포스트 등에 따르면 일리노이주 앤티오크 경찰서는 이날 시위대를 향해 반자동 소총을 발사해 2명을 숨지게 한 혐의(1급 고의살인)로 카일 리튼하우스(17)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리튼하우스는 전날 위스콘신주 커노샤에서 벌어진 블레이크 사건 규탄 시위에 참가해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시위 참가자들이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구호를 외치는 도중 갑작스러운 총성이 울렸고, 자동 소총을 든 한 백인 남성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일부 시위 참가자들이 추격하자 그는 재차 총부리를 겨눴다. 2명이 각각 머리와 가슴에 총을 맞고 숨졌고, 다른 1명도 총격을 받았다. 잔혹한 행동 끝에 경찰에 잡힌 백인 남성은 고작 17세의 소년 리튼하우스였다.
주목할 점은 리튼하우스가 총격 사건 몇 시간 전 보수성향 인터넷매체인 데일리콜러와 인터뷰를 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주민들이 다치고 있다.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 나의 일”이라며 “누군가 다친다면 난 위험한 곳으로 달려갈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총을 가진 이유”라고 주장했다. 외모, 나이에 맞지 않게 스스로 ‘무장요원’을 자처한 것이다.
또 그는 SNS를 통해 경찰 등 공권력에 과도한 애착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5월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무참히 죽인 공권력에 분노하는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에 맞서 ‘경찰 생명도 소중하다’(Blue Lives Matter)는 구호를 곳곳에 올렸다. 제복을 입거나 성조기 문양 슬리퍼를 신은 채 소총을 쥔 사진도 여러 장이었다. 사실상 공권력을 ‘숭배’한 셈이다.
앞서 블레이크는 지난 23일 커노샤에서 경찰관들과 말다툼을 벌이는 듯한 장면이 포착된 직후 자신의 자동차로 걸어가 문을 여는 순간 등 뒤에서 경찰 총격을 받고 쓰러졌다. 당시 차 안에 3살, 5살, 8살 아들이 타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찰을 향한 분노가 들끓었다. 미 전역에서 항의 시위가 격화되고 있는 이유다.
한편 리튼하우스는 사건이 벌어지기 전 커노샤 카운티 법원 근처의 한 고등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담벼락에 새겨진 낙서를 청소하는 모습이었다. 성조기가 새겨진 모자를 뒤집어쓰고, 초록색 계열 티셔츠를 입은 소년의 뒷모습. 리튼하우스였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