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부인…“합리적 액수면 내일이라도 타결”
트럼프 당선되면, 방위비 인상 압력 더욱 높일 듯
바이든 승리하면, 한국 제시 수준에서 빨리 합의될 전망
한국과 미국 간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꽉 막혀 있다. 한·미 방위비 협상이 11월 3일 실시될 미국 대선 이후에야 타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미국 워싱턴에서 확산되고 있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26일(현지시간) “한국은 시간을 끄는 지연전술을 구사하고 있고, 미국은 대선으로 인해 한·미 방위비 협상 타결에 대한 의지가 크게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미 모두 서둘러 매듭지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11월 미국 대선 이전에 방위비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강조했다.
켄 가우스 미국 해군연구소(CNA) 국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국이 한·미 방위비 협상에서 지연전술을 쓴다는 얘기가 워싱턴에 퍼져 있다”면서 “한국이 시간을 끄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며, 만약 한국이 이런 상황에서 시간을 끌지 않는다면 그게 놀라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외교부는 한국이 방위비 협상에서 시간을 끈다는 주장을 부인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가 시간을 끈다는 인식은 사실과 다르다”며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며 공평한 분담금 타결이 가능하다면 내일이라도 합의할 수 있다는 게 우리 정부 입장”이라고 말했다.
해리 카지아니스 국익연구소(CNI) 한국담당 국장도 “한국이 지연전술을 구사한다고 보지 않는다”면서 “한국이 시간을 끌다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한·미 관계는 극도로 악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지금 요구액보다 더 높은 분담금을 제시할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현재 한·미 방위비 협상은 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태다. 한·미 양측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만 놓고 보면,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의 승리가 한국에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연전술 얘기가 퍼지는 배경이 되고 있다. 미국 대선이 70일 밖에 남지 않은 점도 대선 뒤 타결 가능성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한국이 트럼프 대통령이 만족할만한 새로운 제안을 꺼내지 않고 있어 미국 측 시각에서는 지연전술로 보일 수 있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국이 협상에 조바심을 내지 않고, 침착하게 협상에 임하는 것이 어떻게 지연전술이 될 수 있느냐는 반론도 설득력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7월 17일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상대방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한·미 대통령 선에서 방위비 협상이 막혀 있다면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13억 달러(1조 5431억원)를 한국에 요구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은 온통 미국 대선에 쏠려 있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협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측 대표를 교체하는 강수를 뒀으나 진척은 없는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후보의 외교안보 정책이 상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전통적 동맹 국가들을 압박하고 있다. 그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이 압박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바이든 후보는 지난 20일 민주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동맹국들과 함께 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많은 미국 전문가들도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한국 등을 포함한 동맹국들에 방위비 압력을 더욱 높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바이든 후보가 되면 전통적인 한·미 관계가 복원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우스 국장은 “한·미 방위비 협상이 미국 대선 전에 타결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면서 “지금 트럼프 행정부에게 한·미 방위비 협상은 서둘러 처리해야 할 긴급한 이슈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우스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되면 지금 요구한 액수보다 방위비 분담금을 올릴 가능성이 크며, 주한미군 감축 카드까지 꺼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한·미 모두 방위비 협상을 미국 대선 이전에 타결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또 “바이든 후보가 승리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과 정반대로, 전통적이고 안정적인 한·미 관계가 복원될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대체적으로 한국이 제시한 인상 수준에서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반론도 있다. 카지아니스 국장은 “미국 대선 이전에 한·미 분담금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은 ‘50대 50’”이라고 밝혔다. 이어 “한국이 지연전술을 구사한다면 비극적인 실수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카지아니스 국장은 이어 “바이든 후보가 대선에 승리할 경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매우 빨리 타결될 것”이라며 “1년이 아닌 다년 계약 형태로 바이든 취임 100일 이내에 한·미가 합의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카지아니스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위비 인상 압력을 “어리석은 집착”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 감축 등 한·미 관계에 균열을 낳을 수 있는 최대 압박을 한국에 가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국도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미국 경제에 대한 투자 등 다른 해법을 트럼프 행정부에 제안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조성은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