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에 사는 권모(32)씨는 지난해 결혼해 전셋방에서 달콤한 신혼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대형 회계법인을 다니고 있는 데다 아내 역시 대기업에 근무해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정부의 연이은 부동산 정책으로 당장 ‘내집 마련’이 어려워질까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권씨는 26일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올라가는데 더 늦어지면 안되겠다 싶어 지난 6월 말부터 매물을 알아봤다. 하지만 매입 포트폴리오를 짜는 순간에도 아파트 가격이 치솟는 바람에 결국 포기했다”고 말했다. 권씨는 지난 6월 9억원 중후반에 거래되던 아파트가 지난달 10억원 후반까지 뛰는 것을 목격하고 “기가 막혔다”고 했다. 이 아파트의 지난해 매매 가격은 7억원대였다.
권씨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사는 것)’로도 부족할 정도로 집값이 올라가는 바람에 이제는 집을 살지 말지 고민할 수 있는 여지도 없어졌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노력으로 자수성가한 자신같은 흙수저들이 되레 주택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신혼부부 특별공급 소득 기준에도 부합하지 못하는 애매한 소득 수준에 대출까지 어려워져 영원히 민달팽이 신세로 살아야 할 판이라는 것이다.
가을 이사철이 다가오면서 전세대란을 우려하는 3040 무주택자들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정부 부동산 정책으로 전세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패닉바잉(두려움에 의한 매입)으로 무주택자 탈출에 성공한 이들의 집값이 오르는 것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서대문구에서 3년째 전세집에서 살고 있는 박모(32)씨도 정부 정책만 믿다가 내 집 마련 기회를 모두 놓쳐버렸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계속 ‘곧 집값이 떨어질 것’이란 정부의 메시지를 믿어오다 이 지경이 됐다”고 토로했다. 그는 앞으로도 울며 겨자 먹기로 석연찮은 정부의 말을 속는 믿어야 하는 현실이 야속할 뿐이다.
청년층이 부동산 시장을 무기력하게 관망하는 분위기는 현장에서도 감지됐다. 동대문구 뉴타운 지역에서 부동산을 하고 있는 한 공인중개사는 “신혼부부들의 매매 관련 상담 문의가 한 달 전과 비교해 30%가량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일반적인 30~40대 직장인 부부가 ‘영끌’로 넘볼 만한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패닉바잉으로 집을 마련한 서모(31)씨는 “어쨌든 사놓고 보니 정말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그 역시 한 달 전만 하더라도 무주택자였다. 그러다 고심 끝에 동대문구에 있는 25평 구축 아파트를 영끌해 6억원에 매입했다.
서씨는 난생 처음 빚을 진다는 부담감에 매매 계약 체결 전날까지도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매입 이후 몇 주 지나지 않았는데도 아파트 가격이 10%나 올라서다. 그는 “실거주 목적으로 하는 수요는 계속 있을 수밖에 없다. 이건 정부의 규제로 잡을 수 있는 영역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단언했다.
혹여나 집값이 떨어지더라도 그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이다. 다들 집이 없어 괴로워하는 시기에 내 집이 생겼다는 그 자체로 만족감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 말대로 다주택자가 내놓은 매물을 영끌하며 사는 30대가 실제로 안타까운 존재가 될지 아닌지는 지켜보면 알 것”이라고 장담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