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중고거래 사이트인 중고나라와 중고거래 앱 당근마켓에서 개 구충제가 불법 거래되고 있다. 의약품을 온라인에서 개인 간 거래하는 건 약사법 위반에 해당되지만 제대로 걸러지지 않으면서 버젓이 불법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중고 거래 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부작용 또한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26일 중고나라와 당근마켓에서 개 구충제(펜벤다졸, 파나쿠어 등)를 검색해보면 중고나라에서는 하루 10건 안팎, 당근마켓은 지역 설정에 따라 차이가 나타나지만 각 지역마다 월 1~2건 이상씩 게시물이 올라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펜벤다졸과 파나쿠어 등 개 구충제는 미국의 폐암 환자 조 디펜스씨가 복용해 항암 효과를 봤다고 주장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실제 폐암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검증된 의약품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이 동물의약품을 사람이 복용했을 때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 온라인 중고 시장에서 판매되는 개 구충제는 폐암 환자와 가족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당근마켓에 개 구충제를 판매하겠다고 올린 사례를 살펴보면 ‘파나쿠어 조 디펜스 세트’라는 제목을 달았다. 가격은 제품과 용량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적게는 한 상자당 1만5000원에서 5만원 안팎에서 거래되고 있다. 폐암 환자와 가족들의 절박함을 악용해 중고 시장에서 불법 의약품 거래가 횡행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고나라와 당근마켓 모두 의약품을 주류, 담배, 동물 등과 함께 ‘거래금지 품목’으로 설정해뒀다. 하지만 개 구충제 등 일부 의약품들은 필터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고나라는 네이버 카페 기반이다 보니 카페에서만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필터링하는 게 어렵다. 네이버 쇼핑에서는 개 구충제를 살 수 없지만 카페에서는 구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중고나라 관계자는 “10명 이상의 모니터 요원이 24시간 문제 게시글을 모니터하고 있지만 하루 39만건, 초당 4.5건씩 새 게시물이 올라오다 보니 100% 모니터링이 어렵다”며 “사용자들이 신고하거나 모니터링으로 불법 게시물이 발견되면 재가입이 불가능한 강퇴 조치를 취한다”고 설명했다.
당근마켓은 필터링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의약품 자체는 거래금지 품목으로 설정돼 있으나 펜벤다졸, 파나쿠어 등 개 구충제에 대해서는 필터링 되지 않고 있었다. 필터링이 제대로 적용됐다면 아예 게시글을 올릴 수 없다.
이에 대해 당근마켓 관계자는 “당근마켓은 운영진이 직접 걸러내는 작업과 AI 머신러닝 기술을 접목시켜 필터링을 하고 있는데 개 구충제는 머신러닝 데이터 학습이 안 된 것으로 파악됐다”며 “취재로 지적된 개 구충제 게시글은 빠르게 삭제했다”고 말했다. 당근마켓에서 게시판 정책에 위반되는 경우에는 게시글과 작성자 모두 자동 차단된다.
대한수의사회에 따르면 동물의약품을 불법 거래하면 약사법 위반으로 고발 조치 될 수 있다. 동물병원에서는 동물 진료 목적으로만 사용하고 진료 후에만 의약품을 취급하고 있다. 펜벤다졸이나 파나쿠어는 일반 의약품이라 약국에서 구매가 가능하지만 폐암 환자에게 항암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한동안 물량 부족을 겪으며 가격 또한 최대 5배 이상 뛰기도 했다.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은 가격이 많이 떨어지고 재고도 생기긴 했으나 여전히 폐암 환자나 가족들 가운데 찾는 분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보건 당국이 일일이 단속하기 힘들다면 업체가 책임감을 갖고 자정 작용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중고거래 시장은 올해만 약 250조원 규모로 추산되며 시장은 계속 성장 추세에 있다. 중고나라는 가입자 수 1800만명으로 국내 최대 중고 거래 사이트이고 후발주자인 당근마켓은 지난 6월 기준 월간 순 사용자 수(MAU)가 800만명, 누적 가입자수는 1200만명을 넘어서면서 고속 성장 중이다.
중고 시장의 성장은 주류 유통업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롯데마트와 아이파크몰 등은 비대면 중고거래 서비스 파라파라와 협업해 마트와 몰에서 중고 물품 거래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주류 업계에서도 관심을 가질 만큼 시장은 커졌는데 사회적 책임 측면에서는 미성숙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중고거래는 엄밀히 말하면 플랫폼만 제공하는 것이라 업체가 전부 책임질 수 없는 구조”라며 “신생 업체들이 많이 생기다보니 사기 거래나 불법 거래 등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