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남학생인 P는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한다. 학교에서 친구에게 맞아서 울고 오는 적이 많다. 놀이터에서도 아이들 틈에 끼어들어 놀지 못하고 주변을 빙빙 돌기만 한다. 학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 겉도는 느낌이다.
P는 어려서 부터도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힘들어 하고, 집에서 동생하고만 놀려고 하였다. 걸핏하면 어린이집에서도 친구에게 맞거나 장난감을 빼앗기고 했다. 하지만 어떠한 대응도 못하고 참기만 했다. 이럴 때면 엄마는 P에게 과도하게 화가 나서 야단을 치곤했다. ‘왜 같이 때리지 못했어?’ ‘왜 안 된다고, 싫다고 말을 못하니?‘‘누굴 닮아 그러니?’ 심지어 친구를 때리는 방법을 가르쳐 줘도 마음이 여린 P는 친구를 때리는 일은 절대 없었다.
엄마도 어린 시절에 너무 내성적이고 소극적이어서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해 외로운 학창시절을 보냈다. 자식만은 자신과 반대로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친구들과 잘 지내길 바랐는데, 자신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 P에게 더욱 화가 나서 참기가 힘들었다. ‘이러면 안 되는 데’ 하면서도...
아이는 엄마의 기질을 물려받은 것인데 어찌하랴? 엄마는 자신이 어린 시절 받았던 외로움의 고통을 아이도 겪는 것이 싫어서 자신과는 반대 성격으로 자라길 바라고 그렇게 만들려고 노력을 하지만 그럴수록 아이는 ‘부담감’을 느꼈다. 타고난 성향을 거스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성격은 타고난 성향, 즉 기질과 환경의 결합으로 만들어 진다. 엄마를 닮아 내향적이고 소극적인 기질을 타고난 아이가 엄마가 주는 부담과 비난으로 ‘아 나는 못난 사람이야’ ‘엄마는 나를 좋아하지 않아’ ‘나는 엄마의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 못 돼’라는 식으로 자신을 생각한다면 결국 ‘친구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나랑 노는 걸 재미없어 할 거야’라고 생각하고 더욱 친구에게 다가가기 힘들고 겉도는 행동을 보이게 된다.
임상에서 P의 엄마와 같은 분들은 흔하게 본다. ‘어린 시절에 친구가 없어서’ ‘공부를 못해서’ ‘외모가 뚱뚱해서’ 등 자신이 받았던 상처와 자기혐오를 자녀에게 투사하면서 과잉 반응하는 거다. 이는 좀 더 들어가면 어린 시절 자신이 만족하지 못한 의존적 욕구를 아이를 통해 채우려는데 마음대로 안되니까 화나는 거다. 아이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기 자신 때문에 화를 내고 있다는 표현이 맞다. 그러면서 ‘친구와 어울리지 못한다고 아이를 비나하고, 공부를 안한다고 강압하고, 많이 먹는다고 음식을 통제하면서 아이의 열등감, 자기혐오를 부추기며 자존감을 추락시킨다. 아이의 부족함에 지나치게 화가 난다면 먼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볼 일이다.
그보다는 아이의 타고난 특성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천천히 보완해 주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좋다.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보자. 친구에게 얻어맞은 아이의 마음을 일단 알아주자. ‘너도 같이 때려라‘ ‘왜 맞고 만 있는 거니?’라고 비난하고 가르쳐도 아이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친구를 사귈 때 자신이 원하는 것, 느끼는 감정을 명확하게 말해 주는 것이 친구를 오히려 편하게 해 준다’고 말해주자. 친구에게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 접근하기조차 않는 다면 ‘친구는 네가 가만히 있으면 자기와 놀고 싶어 하는지를 알 수 가 없어’라고 말해주자. 친구에게 다가갔는데도 친구와 바로 가까워지지 않거나 거절 받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실패를 극복하고 다시 시도하는 것은 아이의 자존감이 높아야 가능하다.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은 실패나 거절을 견디지 못하고 금새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자존감은 위에 말한 대로 아이의 부족함에 대한 부모의 태도가 결정한다. 또 소수의 친구라도 자주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라. 아스퍼거 장애와 우울 장애, 불안 장애 등의 질병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아이들은 경험이 쌓이면서 스스로 친구를 만드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 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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