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인 유죄 판결문 배포… 대법 “공익 목적이면 명예훼손 아냐”

입력 2020-08-26 11:29

조합 관계자의 횡령 혐의가 유죄로 확정된 판결문을 조합원들에게 유포한 것은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공공의 이익이 목적이었다면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상해, 모욕,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의 상고심에서 명예훼손 부분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택시협동조합 조합원이었던 A씨는 2017년 전북 전주시의 한 식당에서 임시총회에 참석하는 조합원들에게 당시 조합의 발기인인 B씨와 관련한 형사 판결문을 배포했다. 판결문에는 B씨가 2016년 7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35회에 걸쳐 11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2년 집행 유예 3년을 선고 받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는 당시 “B씨와 이사장 C씨가 회삿돈을 해먹었다”는 발언도 했다. 검찰은 B씨에 대해선 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가, C씨에 대해서는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A씨를 재판에 넘겼다.

1심과 2심은 상해와 명예훼손 등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A씨에게 벌금 25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B씨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와 관련해 “A씨의 행위로 인해 잘 알지 못하는 다수의 조합원들에게 전과자로 알려지게 된 점 등에 비춰 A씨의 행위가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C씨에 대해서는 “자의적 추측에 근거해 C씨가 실제로 B씨 횡령에 가담한 것처럼 말했다”며 “판결문을 배포하면서 적시한 내용은 객관적 진실과 합치되지 않는 허위”라고 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의 행동이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B씨에 대한 명예훼손의 혐의와 관련해 “조합의 재산 관리 방식이나 재무 상태는 조합원들에게 중요한 관심사고 조합 간부들이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조합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대한 사항으로 볼 수 있다”며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해당하므로 그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했다. C씨 대한 명예훼손 부분에 대해서도 “해당 사실이 허위임을 인식했다는 점이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 취지로 판단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