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세 아들이 보는 가운데 경찰의 총탄에 맞아 쓰러진 미국 흑인 남성이 다시는 걸을 수 없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무참히 죽인 공권력과 인종차별에 분노하는 항의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미국을 휩쓸고 있다.
25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23일 경찰 총격으로 쓰러진 흑인 남성 제이컵 블레이크 주니어(29)의 변호인인 벤 크럼프는 “그가 다시 걸으려면 기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탄환이 블레이크의 척수를 절단하고, 척추뼈도 부숴 하반신이 마비됐기 때문이다. 다른 변호인은 블레이크가 장기에도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고 덧붙였다.
피해자 부친 제이컵 블레이크는 이날 회견에서 “그들(경찰)은 내 아들에게 총을 7번이나 쐈다. 마치 내 아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 아들은 소중하고 그 역시 사람”이라고 항의했다. 모친인 줄리아 잭슨도 “아들이 사건 후 처음으로 한 말은 ‘미안하다’였다”며 “아들이 ‘난 짐이 되고 싶지 않다. 다시는 걷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앞서 블레이크는 지난 23일 미국 위스콘신주 커노샤에서 경찰관들과 말다툼을 벌이는 듯한 장면이 포착된 직후 자신의 자동차로 걸어가 문을 여는 순간 등 뒤에서 경찰 총격을 받고 쓰러졌다. 당시 차 안에는 3살, 5살, 8살 아들이 타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찰을 향한 분노가 들끓었다.
경찰은 지금까지 가정폭력 신고로 출동했다는 언급 외에 총격 경위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함구하고 있지만, 변호인단은 블레이크가 다른 주민들 사이의 싸움을 말리다가 경찰의 총탄에 맞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경찰 당국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낼 계획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으로 미 전역은 석달 전 플로이드가 촉발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가 재점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건이 일어난 커노샤에서는 이틀간의 폭력 시위로 수십 개 건물이 불에 타고, 상점 여러 곳이 파괴된 것으로 집계됐다. 시위대는 야간 통행금지 조치를 거부한 채 매디슨의 주 청사를 향해 가두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시위는 뉴욕, 로스앤젤레스(LA), 시애틀 등 주요 도시들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고, 샌디에이고와 미니애폴리스에서는 경찰과 충돌한 일부 시위대가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자 토니 에버스 위스콘신 주지사는 이날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커노샤에 배치된 주방위군 병력을 두 배로 늘렸다. 피해자의 모친도 “커노샤의 폭력 시위 양상은 가족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아들이 이 장면을 봤다면 절대로 기뻐하지 않을 것”이라며 폭력 시위를 멈춰 달라고 호소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