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공세에 다급해진 중국, 동남아에 러브콜… 영유권 갈등은 여전

입력 2020-08-25 15:32 수정 2020-08-25 16:50
중국과 베트남 외교 수장이 지난 23일 접경지역인 광시좡족자치구 둥싱에서 만나 기념촬영하고 있다.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캡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달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은 불법”이라고 선언하는 등 미국의 공세가 거세지자 다급해진 중국이 동남아 국가들에 잇따라 손을 내밀고 있다.

리커창 총리는 코로나19 백신을 동남아 국가들에게 먼저 제공하겠다고 했고, 왕이 외교부장은 베트남에 남중국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자고 협상을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하지만 중국 해양경비대의 어로장비 압수 문제로 필리핀과 중국의 남중국해 갈등이 심화하는 등 동남아 국가들과의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25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이 외교부장은 23일 베트남 접경지역인 광시좡족자치구 둥싱에서 팜 빈민 베트남 외교부장을 만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한 협상 테이블로 나올 것을 촉구했다. 양측 외교부장은 2009년 육상 경계선 획정 및 경계 표지판 설치를 기념해 만났다.

왕 외교부장은 “육지 경계의 성공적인 실천을 거울삼아 해상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며 “양국은 육지 경계와 통킹만 해역 경계 획정 과정에서 쌓은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해상에서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양국 관계의 대승적이고 장기적인 협력 필요성을 고려해 적극적인 대화 협상을 벌여 하루속히 양측이 납득할 수 있는 기본적이고 장기적인 해결책을 찾아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을 함께 지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왕 부장이 베트남에 적극적인 대화를 제의한 것은 그동안 양국간 경제협력에 주력하면서 후순위로 미뤄놨던 남중국해 분쟁을 조속히 해결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싱가포르의 베트남 문제 전문가인 레홍힙은 “중국은 주변 국가들을 자국의 파트너로 되돌리고, 적어도 미국의 편에 서서 중국에 맞서는 것을 막기 위해 동남아 국가들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며 “전략적 위치를 감안할 때 베트남은 중국의 중요한 공략 대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베트남의 최대 교역 상대국으로서 경제분야 협력 파트너임을 강조하지만 베트남에게는 안보가 더 중요해 보인다”며 “베트남과 미국의 관계가 최근 크게 진전된 것은 남중국해와 관련한 양측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지난 4월 베트남의 EEZ에 자국 해안 경비함과 해양탐사선을 진입시켜 외교적 갈등을 일으켰고, 같은 달 남중국해 파라셀 군도 인근 해상에서는 중국 선박이 베트남 어선과 충돌해 베트남 어선이 침몰하는 등 양측의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리커창 중국 총리.EPA연합뉴스

리커창 총리는 24일 열린 란창-메콩강 협력회의(LMC) 정상회의 화상회의에서 중국 주도로 공중 보건 전문 기금을 설립해 메콩강 지역 국가들에 방역 물자와 기술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리 총리는 “중국이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완료해 사용하게 되면 먼저 메콩강 국가들에 제공할 것”이라며 “중국과 동남아는 메콩강을 공유해 사실상 운명공동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중국은 동남아국가들에게 러브콜을 하면서도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은 계속 이어가고 있다.

중국 해안경비대가 지난 5월 필리핀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있는 스카보러 암초 인근해역에서 어민들이 설치한 어류군집장치(FAD)를 압수해 필리핀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다.

필리핀 외교부는 지난 20일 중국에 항의 문서를 보냈다. 필리핀은 또 “서필리핀해에서 정기적으로 순찰하는 필리핀 군용기를 향해 중국 측이 계속해서 레이다 전파를 쏘고 있다”고 비난했다.
남중국해서 군사훈련하는 중국 군함.SCMP캡처

이에 대해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1일 “중국 해안경비대는 법을 집행한 것으로 정상적인 활동”이라며 오히려 “필리핀 군용기가 남중국해 다른 영유권 분쟁 지역에서 중국 영공을 침범하고 있다”고 맞섰다.

그러자 델핀 로렌자나 필리핀 국방부장관은 23일 중국이 남중국해의 90%를 차지하는 9단선을 긋고 자국 영해라고 주장하는데 대해 “중국의 ‘9단선’ 주장은 날조이고, 그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며 중국이 필리핀의 해양 영토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강력 비난했다.

그는 또 “우리 EEZ 안에 있는 일부를 불법적으로 점거하는 등 도발하는 것은 중국”이라며 “중국이 법을 집행하고 있다고 주장할 권리는 없다”고 반박했다. 중국은 2012년 필리핀의 EEZ 안에 있는 스카보러 암초를 강제로 점거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