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는 ‘Dementia’라고 하는데요 이는 박탈 혹은 상실을 의미하는 라틴어 접두사 ‘de’와 정신을 의미하는 ‘ment’ 그리고 상태를 나타내는 접미사 ‘ia’의 합성어입니다. 역사 속에서 많은 이들이 치매에 관해 언급했는데 근대에 이르러서는 프랑스의 의사 필립 피넬에 의해 치매라는 진단명이 처음으로 의학용어로 채택되었습니다.
피넬의 제자인 장 에스퀴롤은 ‘치매는 뇌질환으로 인해 분별력, 지능, 의지의 장애가 나타나는 것이며, 즐기던 기쁨을 잃는 것이고 부자가 가난해지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치매’란 한자어는 그 뜻이 좋지 않습니다. 둘 다 어리석다는 의미의 한자인데요 치매 환자에게 ‘노망났다’라고 하는 것처럼 비하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 ‘인지장애’ 정도로 표현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이 있습니다.
치매에 걸리게 되면 가장 흔하게 기억장애 증상이 나타나게 되며 그 외에 언어 장애, 시공간 능력의 저하, 계산 능력 감소 등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팔순을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아들이 찾아왔는데 손자로 착각하기도 하고 세끼 꼬박 챙겨주는 며느리에게는 밥을 안준다고 투정을 부립니다. 어느 날 갑자기 경찰에 전화를 해서 집에 도둑이 숨어있는데 심지어 그 도둑이 아들이라고 합니다. 밤에 안 주무시고 돌아다니다가 예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방에 계시다며 대화를 하기도 합니다. 가족들은 그게 아니라고 열심히 설명하고 그러지 마시라고 신신당부를 해보지만 그럴수록 할아버지는 완강하게 버티면서 없던 증상이 더 나타나기도 하는데 생전 가본 적도 없는 곳을 돌아다니기도 하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면 결국 부모와 자식 간에는 절망감이 깊게 드리우게 되고 급기야 요양원을 찾게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치매와 많이 혼동하는 증상으로 기억상실, 즉 건망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Amnesia’라고 하는데요. 부정을 의미하는 라틴어 ‘a’와 기억을 의미하는 ‘mne’ 그리고 상태를 의히하는 ‘-ia’의 조합어입니다. ‘mne’라는 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Mnemosyne)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므네모시네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땅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이 시대에는 아직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일들을 기억에 의존하여 전하고 남겨야만 했습니다. 므네모시네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누나이고 제우스의 고모인데 조카인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아홉 뮤즈를 낳습니다. 이들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완벽한 기억력 덕분에 인간세상의 모든 예술을 관장하였으며 모든 일들을 후대에 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노화에 의한 건망증과 치매는 몇 가지 구분되는 점이 있는데요. 건망증은 식사한 것은 기억하지만 무얼 먹었는지는 기억을 못하는 반면, 치매는 식사한 자체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건망증은 가족을 알아보는데 비해 치매가 심해지면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딸을 부인으로 착각하는 등 누가 누구인지 모르게 됩니다. 건망증은 물건의 사용법을 알지만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는 반면, 치매는 물건의 이름도 모르고 사용법 또한 모릅니다.
여러분들도 많이 들어보셨을 알츠하이머병은 노년기에 발생하는 치매의 가장 흔한 원인입니다. 1907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알로이스 알츠하이머에 의해 최초로 보고되었으며 알츠하이머병 초기에는 최근의 일을 자세히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장애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먼 과거의 일들은 상대적으로 잘 기억을 하므로 자녀들은 미처 치매를 의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체적으로 지난주에 누구를 만났는지 며칠 전에 어디를 갔었는지 오늘 아침엔 무엇을 드셨는지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합니다. 점점 진행됨에 따라 인지기능의 장애뿐 아니라 성격이 변하고 초초해지고 우울증이나 망상, 환각 등의 증상이 동반되며 말기에 이르면 몸이 경직되고 보행장애도 나타나게 됩니다.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베타아밀로이드가 과도하게 뇌에 축적되는 것을 핵심기전으로 보고 있습니다. 진단방법으로는 뇌의 CT나 MRI 촬영 등으로 뇌의 위축소견을 확인할 수 있으며, PET로는 뇌의 각 부위별 기능이상까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서는 아세틸콜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감소하게 되는데 이를 방지해주는 약물은 치매의 지연을 늦추는 효과가 있으며 기타 몇 가지 치료제들이 현재 활발한 임상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치매는 유전인지 궁금하실텐데요 연구 결과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았던 부모가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치매 발병 위험이 4~10배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05년부터 인간 유전자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는데 자발적인 참가자의 유전자 분석을 공개함으로써 각 개인의 유전자에 따른 질병을 연구하는게 목적입니다. 이 프로젝트에는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혀낸 제임스 왓슨도 참여하였는데 연구 결과 아포지질단백질 ApoE4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이 3~15배 정도 높아진다고 합니다.
우리의 뇌에는 혈관-뇌 장벽(Blood Brain Barrier,BBB)이라고 하는 세밀한 그물 같은 벽이 있어서 뇌로 들어오는 해로운 물질은 걸러내고 뇌의 노페물은 내보내는 기능을 합니다. ApoE4 유전자는 바로 이 혈관-뇌 장벽을 손상시킴으로써 치매의 위험을 높인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죽상경화증, 다발성경화증, 수면무호흡 등 다양한 질환과의 관계는 물론 제가 앞서 노화의 원인으로 언급해드렸던 텔로미어의 단축과도 연관성이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있습니다. 비타민D가 정상수준 이상으로 유지되고 있으면 ApoE4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에게 뇌를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으니 본인의 비타민D 레벨을 측정해보고 정상 이하라면 꾸준히 보충해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노화에 따라 근육량이 감소하게 되면 치매의 위험도 높아지게 됩니다. 근육량을 유지하려면 충분한 영양과 꾸준한 운동 등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대부분 정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노인은 젊은이에 비해 단백질 섭취를 통해 필수 아미노산을 더 많이 보충해야 하는데 오히려 적게 섭취하고 활동량 또한 줄어들기 때문에 근육의 양과 힘 모두 감소하게 됩니다. 인지기능과의 상관관계에 있어서는 근육의 양 보다는 근육의 힘 즉 근력이 훨씬 많이 작용하는 것으로 연구결과 입증되고 있는 만큼 보디빌더처럼 벌크업을 위한 운동보다는 근력강화를 위한 운동이 좋겠습니다.
치매의 치료약 연구가 시작된 지 3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지 못한 만큼 완치약도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현대의학의 눈부신 발달로 그동안 베일에 가려왔던 치매의 원인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으며 몇 가지 약물들은 치매의 진행을 상당히지연시켜 주거나 일부 원인에 대한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치료가 어려운 질환일수록 근거 없는 엉터리 치료법들이 난무하게 되는데요 절대 이에 현혹되지 않는 지혜를 우리 스스로 갖춰야 하겠습니다. 하루속히 획기적인 치료제가 개발되어 치매 환자 및 가족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길 기대합니다.
최경호 가정의학과 전문의(아이비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