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에른 뮌헨의 스트라이커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32)에게 익숙한 수식어는 ‘2인자’다. 오랜 세월 유럽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하나로 군림했지만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그늘에 가렸다. 약체인 조국 폴란드 대표팀에서 힘을 쓰지 못했던 것도 가혹한 평가의 이유 중 하나였다.
23일(현지시간) 열린 이번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레반도프스키에게 그간의 설움을 털어낼 기회였다. 한 해 유럽 축구사의 가장 중심이 되는 자리에서 골 폭격을 한다면 큰 무대에 약하다는 오해도 씻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날 레반도프스키는 골 욕심을 부리다 자멸하는 대신 팀을 위해 헌신하는 길을 택했다. 결과는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이었다.
레반도프스키는 이날 전방에서 상대 빌드업을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모습이었다. 파리 생제르맹이 공을 빼앗아 곧바로 역습으로 전개하려고 할 때마다 상대 미드필더나 수비진에 달라붙어 패스를 저지했다.
이날 레반도프스키가 저지른 파울은 팀 내에서 가장 많은 5회에 달했다. 이중 오프사이드 반칙은 1회뿐이었다. 이전 경기인 올랭피크 리옹과의 경기에서 반칙 0회, 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1회였던 것과는 비교되는 기록이다. 바이에른 뮌헨의 첫 슈팅도 레반도프스키가 공을 잡을 기회를 티아고 알칸타라에게 양보하며 나왔다.
그렇다고 날카롭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골대를 맞춘 슈팅을 포함해 시종일관 위협적이었다. 스카이스포츠는 “전반 초반에는 전반적으로 파리 생제르맹이 더 나은 경기를 했지만 레반도프스키는 너무나 위협적이었다. 전반 중반까지 겨우 공을 6번 만졌지만 두 번이나 골에 가까운 슈팅을 했다”고 평했다. 이번 대회에서 10경기 15골을 넣은 명성에 걸맞은 기량이었다.
한지 플리크 바이에른 뮌헨 감독은 경기 뒤 인터뷰에서 “팀 전체적으로 경기에 임하는 태도가 훌륭했다”면서 “공격수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조차 수비에 적극적으로 나서 공을 쫓았다. 완벽한 팀 퍼포먼스였다”라고 만족을 드러냈다.
플리크 감독은 “선수 개개인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레반도프스키는 대회 최고의 골잡이로 활약했고 그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면서 “누가 최고의 선수인지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선수가 뽑힌다면 그가 그 자리에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번 시즌 발롱도르 시상이 취소되며 유력 후보였던 레반도프스키를 실망하게 했던 걸 위로하는 듯한 언급이었다.
레반도프스키는 시합이 끝난 뒤 개인 인스타그램에 “꿈꾸는 걸 멈추지 말라. 실패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라”고 적으며 감격스러운 심정을 전했다. 이어 “응원에 감사한다. 우리 능력을 믿어줘 고맙다. 우리는 유럽 챔피언이다!”라고 적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