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역사적 돌파구”라는데 ‘대선용’ 의심…혈장치료 긴급승인 후폭풍

입력 2020-08-24 13:35 수정 2020-08-24 14:2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혈장 치료 긴급 승인에 대한 언론 브리핑을 갖고 있다. AP뉴시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3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회복한 환자의 혈장을 이용한 치료를 긴급 승인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 브리핑을 갖고 이번 긴급 승인을 “중국 바이러스에 대한 우리의 전투에서 ‘매우 역사적인 돌파구(very historic breakthrough)’”라고 치켜세웠다. 또 “오늘은 우리가 고대하던 아주 대단한 날”이라고 기뻐했다.

하지만 미국 FDA의 이번 긴급 승인을 둘러싸고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도움을 주기 위한 대선용 조치라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AP통신은 “일부 보건 전문가들은 (긴급 승인을) 축하하기 전에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고 보도했다.

특히 긴급 승인이 발표된 시점이 이런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공화당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하는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기 전날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22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FDA 안의 ‘딥 스테이트(국가를 비밀리에 조종하는 세력)’가 제약회사들이 백신과 치료제를 테스트하기 위해 실험자를 확보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음모론적인 주장을 펼친 다음 날 승인이 발표됐다.

FDA는 이례적으로 발표한 성명에서 “입원 후 사흘 안에 혈장 치료제로 치료를 받은 코로나19 환자들의 사망률이 감소하고, 상태가 호전됐다”고 설명했다.

FDA는 이어 현재까지 코로나19 환자 7만명에 혈장 치료제가 투여됐으며 이 중 2만명을 대상으로 한 분석 결과, 안정성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가장 기뻐한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것은 매우 강력한 치료법”이라며 “이것은 믿을 수 없는 성공률을 보였다”고 말했다. 또 “10만명이 넘는 미국인들이 이미 이 치료법으로 치료받았으며, 사망률이 35% 감소하는 것이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스티브 한(오른쪽)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 참석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혈장 치료 긴급 승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AP뉴시스

그러나 온도차도 감지됐다. 브리핑에 동석한 앨릭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과 스티브 한 FDA 국장은 “촉망되는 치료법(promising treatment)”이라고만 말했다. 과장하기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브리핑을 18분 만에 끝낸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 3일 실시될 미국 대선을 의식해 아직 완전하게 검증이 안 된 혈장 치료를 밀어붙인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치켜세웠다.

AP통신은 “혈장 치료가 코로나19 전투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현재까지 혈장 치료가 코로나19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인지, 언제·얼마나 투약해야 되는지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도 “무작위 임상시험에서 혈장 치료가 코로나19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강력한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로이터통신은 “혈장 치료 긴급 승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FDA를 강하게 질타한 직후에 나왔다”고 전했다. FDA 내의 일부 세력이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방해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 나온 직후 FDA가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굴복해 긴급 승인 결정을 내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보건 전문가와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미국 생화학·분자생물학 학회의 벤자민 콥은 AP통신에 “(이번 전격 승인은) 눈에 확 띄는 타이밍”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또 다시 미국민들의 건강과 복지보다는 정치적 목표를 우선에 두고 있다”고 AP통신에 말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던 마이클 스틸은 트위터에 “이것은 좋은 과학이나 여러분의 건강에 대한 것이 아니라 트럼프 재선에 대한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